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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감동ㆍ교감이 흐르는 고요한 멜로 드라마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5-01 21:06 게재일 200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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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상)

어긋난 은밀한 시선 두 남녀에게 찾아온 은밀한 동거의 시작

영화 ‘궤도’ 는 침묵의 영화이다.


말을 하지 않는 남자와 말을 못하는 여자가 등장하니 사실 말이 필요 없지만, 이 말없음이 답답하거나 소통의 장애가 아니라 그 어떤 영화보다도 더 절절하게 말을 걸어온다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말만 없는 것이 아니다.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할 만한 시각적 쾌락도 없다. 롱쇼트와 롱테이크가 반복되고 인물의 시점 쇼트가 태반인 이 영화에서는 보는 것 자체도 제한적이다.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어도 카메라는 멀리 찍기를 하고, 전체를 파악하고 싶어도 인물의 시점으로 제한되는 이 어긋남은 불편하고 불친절한 동시에 기묘한 긴장을 조성한다.


여기에 백미는 주인공 철수역의 최금호이다. 여덟 살 때 고압선에 감전되어 실제 두 팔을 잃은 지체장애인인 그는 굳건하고 강렬한 아우라를 영화 곳곳에서 분출한다.


김광호 감독은 2005년 옌벤 TV방송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금호의 삶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거의 1년 동안 최금호와 숙식을 같이 하면서 그와 호흡을 맞추었고, ‘처량함이라고 하기엔 너무 강렬한’ 그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 극영화 ‘궤도’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궤도’는 교감에 관한 영화이다.


장애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유폐시킨 채 외롭게 살아가는 남자(최금호)와 벙어리 여자(장소연) 사이에 은밀하게 싹트는 교감을 그려낸다. 남자는 사람들과 떨어져 산기슭 오두막에서 홀로 지낸다.


그는 두 팔이 없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익숙하게 일상을 영위한다. 양 발로 담배를 말아 피우고, 산나물을 채취한다.


옷을 입고 가방을 둘러맨다. 혼자 살아온 사람의 너무나 익숙한 외로움이 보는 사람을 먹먹하게 한다. 그러나 정작 남자는 그런 감정 자체에 반응하지 않는다.


어느 날 고립된 남자의 영역에 한 여자가 들어온다. 그녀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향숙이라는 이름의 이 여자는 사스 감염자로 의심하는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할머니의 장례를 보러 가는 길이다. 잠시 남자의 집에 의탁하며 빨래를 하거나 이부자리를 펴주며 두 사람의 기이한 동거가 시작된다.


두 팔이 없어 수화조차 할 수 없는 남자와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여자는 조금씩 무언의 대화를 시작한다.


이 영화가 두 남녀의 교감을 낭만적으로 혹은 열정적으로 그려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두 사람의 교감은 바라보는 것에 의지하지만 눈빛의 교환보다는 비껴가거나 어긋나는 시선 속에서 더욱 농밀해진다. 두 남녀의 은밀한 교감의 형성에 최금호와 장소연은 최적의 조합을 보여주었다. 최금호의 카리스마는 그의 실제 체험에서 비롯되는 것일 테지만, 장소연은 희미한 듯 지어보이는 미소와 설핏 스쳐가는 삶의 그늘이 드리워진 눈빛만으로 이 영화의 여성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구현해냈다는 평을 들었다.


이 영화는 장르적으로 멜로드라마의 현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범주에서 약간 비껴 있는데, 감정적 상승작용을 지원하는 음악이 없고, 연기 패턴 역시 매우 절제 되어 있어 감정의 잉여를 표면화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없음’과 절제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감정의 출렁임으로 전달된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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