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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털과 개털의 차의

정태원 기자
등록일 2009-04-30 22:06 게재일 200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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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비리를 생계형 범죄라며 옹호한 것을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 조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얼마나 재산이 없고 청렴했으면 참모가 이런 일을 했을까? 노 전 대통령은 생계형 범죄에 연루된 사람”이라고 했다.


수백만 달러의 검은 돈을 받고 일억 원짜리 고급시계를 부부가 선물로 받은 일이 생계형 범죄라면 진짜 생계형 범죄자들이 명예훼손으로라도 들고 나설 일이다.


조기숙씨는 이 발언이 논란이 빚어지자 자신이 한 이야기의 핵심은 ‘박연차 게이트’가 현 정권의 정치보복이라는 말을 한 것인데 핵심을 비껴간 지엽적인 말을 두고 시비를 거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되받아쳤다. 조씨의 이 말은 온당한 것인가?


수천억씩 받은 것만이 범죄이고 수십억 원 받은 건 생계형 범죄에 불과한데도 이를 수사 하니 정치 보복이다 라면, 명확한 범죄를 보고도 덮어두고 지나가야 한다는 말 아닌가? 조씨가 표현한 방식의 범죄자 구분은 교도소 재소자들 사이에도 있기는 했다. 이른바 ‘범털’과 ‘개털’의 차이이다. 횡령을 하고 사기를 쳐도 규모가 크면 ‘범털’이요, 몇십 만원 몇 백만 원 정도면 ‘개털’로 불리었다. 범털이든 개털이든 털일 바에야 마찬가지인데도 조씨는 개털은 털도 아니라고 우기고 있는 꼴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인지부조화 상태의 인간 군이 우리사회 곳곳에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는 데 있다.


조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야 자신들이 모셨던 분에 대해 인간적인 연민으로 옹호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나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이 이 문제를 두고 일절 함구하고 있는 일이라든지, 도덕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회단체 어느 곳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사례를 보지 못했다.


특히 포털 사이트에 드나드는 상당수의 네티즌들은 예의 그 거친 어투로 수사기관과 현 정권에 삿대질까지 해댄다. 이처럼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진영의 논리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진영의 논리에 빠지면 아예 ‘상대 진영은 이렇다.’라고 규정지어 놓고 시작한다. 정상적인 법절차에 의해 드러난 범죄 혐의점에 대해 수사를 하는데도 실체적 진실이야 어디에 있던 “나쁜 집단이 우리 편을 족치려 한다.”라며 무조건 내 진영에 대한 편들기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편으로,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고, 또 같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같은 입장의 사람들인 만큼 판단도 같이 해야 한다는 논리에 빠져 함께 나서는 것이다.


청렴과 도덕성을 강조하면서 정치를 해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받은 몇 십억 원은, 몇 천억 원씩의 비자금을 조성했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의 비리보다 국민들을 더 실망시켰는데도 노무현은 우리 편이니까 잘못이 없다거나 상대적으로 잘못이 작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미래를 결정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를 위한 여과 장치로 합의와 일관성, 그리고 권위와 계시, 시간, 과학을 들면서 사람과 지역, 문화마다 어떤 여과 장치를 쓰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고 했다. 선과 악, 법과 무질서, 민주와 독재, 보편성과 독선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류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사회적 여과장치가 작동되고 있는지 되돌아 할 때이다.


우리는 지금 현재 겪고 있는 혼돈의 세상도 “때가 되면 바로 잡힐 것이다.”라는 ‘시간(세월)’이라는 여과장치에 나라의 명운을 맡기는 것은 아닌가? 그러기엔 우리의 갈 길이 너무 바쁘고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 너무 무겁다.


진영주의는 시쳇말로 패거리 주의, 패거리 정치, 패거리 문화다. 우리는 지금 이념과 정치, 종교, 문화에 이르기까지 너무 패거리 주의에 빠져 있다. 이 진영주의가 지배하는 현실의 굴레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개털’도 ‘털’로 보이는 정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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