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전군’ 사령관 육군 대장으로 군 생활을 마감한 ‘정수성(鄭壽星·63)’당선자는 63세의 나이에 정치인으로서의 첫 발을 딛었다.
하지만 40년 군 생활을 통해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의식으로 몸에 밴 영원한 군인이지만 새로운 정치환경에 적응해 지역민들의 염원을 군사전략 처럼 치밀하게 풀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변모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선 소감으로 그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수많은 고비와 난관이 줄을 이었고, 그 때마다 나는 최선의 노력 뒤에 따라오는 하늘의 뜻을 기다리곤 했었다”고 말해 ‘진인사대천명’이 그의 좌우명인 것 같다.
이를 두고 그는“앞으로도 그와 같은 자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며 굳건한 의지를 보였다.
1946년 1월 02일 경주시 월성군 강동면 오금리에서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정수성은 어릴 때는 병을 달고 살았을 만큼 약골이었다.
그는 양동초등학교(44회)를 들어갈 무렵부터 건강 체질로 바뀌어 갔다.
1961년 경주중학교(22회)를 거쳐 1964년 경북고등학교(45회)를 졸업한 후 1966년에 육군보병학교에서 갑종 202기의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군문의 첫 임무는 수색중대 소대장. 월남전에 참전한 그는 1967년 10월, 백마부대 소대장으로 두 다리에 한 발씩 ‘총탄’을 맞고도 전투 지휘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특히 그는 지금도 왼쪽 다리의 총탄은 제거하지 못한 채 갖고 산다.
21사단 수색대대장(중령)과 지난 1991년 ‘1스타’로 진급해 수도군단 참모장, 국방부 근무지원단장, 육본 인참부 인사근무처장과 제 55사단장(소장) 육군보병학교장(소장),1999년 수도군단장(중장),2003년 제 1군사령관(대장)를 역임했다.
훈·표창은 보국훈장(통일장),미 공로훈장 등을 수상했다. 또한 국방부 특별진상조사단 단장으로서 주요현안 명확하게 처리했다는 언론의 평을 받았다.
그 밖에 러시아 극동군관구사령부를 방문해 한·러 군사교류협력을 증진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군 후배들은 그를 두고 ‘솔직담백하고 선이 굵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야전지휘관 또는 ‘철저한 자기관리 및 솔선수범형이라 평한다. 더욱이 그는 ‘야전교범으로 불리우릴 만큼 대부분의 군생활을 마친 군인의 표상’이라고 한다.
가족으로는 처 이복구(李福九·61) 여사 와 큰 아들 연수(淵洙.38)씨 (한양대학교 졸업. 현 삼성생명 부지점장)와 둘째 성우(盛友.36.육사졸업. 현재 육군소령 복무)씨 등 2남을 두고 있다.
그는 “남은 생애를 내 고향 경주와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는 기쁨,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며 선거기간 동안 고충과 기쁨을 한마디로 함축했다.
/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