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허리가 물들어서
정강이는 시들어서
거기 절을 짓고 굴을 파고
향기처럼 소멸을 빌다 보니
동백이 오고 있다
고창군 선운리 선운사
법고 소리,
둥구둥구둥둥둥둥둥 딱 둥둥 둥구 둥둥둥 따기따기 둥둥
국화 정강이 슬퍼서 절을 짓고 빌다보니
동백이 오고 있다
동백 속에 또 절을 짓고 빌어서
국화를 부르리
고창군 선운리 선운사
꽃밭 두드리는
법고 소리,
-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 주세요(시와시학사·2008)
지난해 가을에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 주세요’라는 좀 특별한 시집 한 권이 발간되었다. ‘책머리에’서 편자(編者) 김화영은 이 시집을 두고 “무심히 걷는 길가에서 조우한 꽃과도 같은 것”이요, “길 위에서 얻은 무위(無爲)의 산물”이라 했다. 그 길가, 길 위가 바로 ‘선운사 동구’시비가 서 있는 곳,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 옆 마을에 있는 전북 고창 선운사이다. 시인 정현종, 서정춘, 김화영과 선운사 주지 법만(法滿), 또 문인수, 장석남, 나희덕, 송희 등의 시인들이 그 길 위에서 이런 저런 인연으로 만나서 아름다운 한 권의 시집을 묶어낸 것이다. 이 시집은 이른바 “미당과 선운사와 시를 잇는 책”이다. 이 책 속에는 미당의 시는 물론, 선운사에 주석했거나 놀다 간 선승과 시인 묵객들의 시편들, 그리고 우리 시대 여러 현역 시인들의 선운사와 연(緣)을 닿고 있는 시편들이 꽃처럼 피어나 있다. 나는 이 시편들 가운데 위에 있는 장석남의 시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향기처럼 소멸을 빌다 보니/동백이 오고 있다”라는 시구를 읽다 내 몸이 다 서늘해졌다. 향기처럼 ‘소멸’을 비는 저 사내는 정녕 한 소식을 얻은 작자임에 분명하리. 시의 중간부에 “둥구둥구둥둥둥둥둥 딱 둥둥 둥구 둥둥둥 따기따기 둥둥”이라고 좀 길게 표현된 “고창군 선운리 선운사/꽃밭 두드리는/법고 소리”가 국화를 부르고 동백을 부르고, 또 이 시집 속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불러 온 것인가. 재미없는 작금의 살림을 작파해버리고 저 “꽃밭 두드리는/법고 소리”속으로 남몰래 들어가 새 살림을 차리고도 싶다.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