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스나 콜라처럼
마시는 것이 아니다
젖은 먹는 것이다
이 오래고도 유정한 식량
언젠가 ‘아프리카의 참상’이란 보도사진전에서
정강이뼈가 유독이 앙상했던 쾡한 눈의 덩치 큰 한 사내 아기가, 살갗이랄까-아무튼 모든 살점이 육탈해버려서-머리 위로 올라붙은 그야말로 피골상접한 엄마의 젖을 빨고 있었다.
아기는 엄마의 바닥을 빨고 있었고, 엄마는 자기 육신의 맨 마지막을 아기에게 내어 물리고 있었다.
참혹한 것 넘어서는
이 숭엄함
원래 종교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젖은 우리의 하나님이었다.
- 숟가락(천년의시작·2008)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 발해. 그 발해의 영토와 문화를 백 편의 연작시로 탐사해 이룩한 상희구의 시집 ‘발해기행’(현대시학·2006)은 우리 한국 시단이 거둔 소중한 성과 가운데 하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전인미답(前人未踏)의 ‘발해기행’으로 한국시의 영토를 더욱 확장한 그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지난 해 연말에 발간된 상희구의 새 시집 ‘숟가락’은 유년시절과 고향(대구)에 대한 추억과 일상생활의 체험이 서정으로 꽃 피운 순수 서정시집이다. 시 ‘젖’은 상희구 시인이 언젠가 본 아프리카 참상을 소재로 한 보도사진전에서 얻어진 시편이다. 위 시에서 짧은 다른 시행들과는 달리 6∼7행에 좀 길게 서술된 아프리카의 참상-정강이뼈가 앙상하고 쾡한 눈의 아이가 피골상접한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을 시인은 “아기는 엄마의 바닥을 빨고 있었고, 엄마는 자기 육신의 맨 마지막을 아기에게 내어 물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 광경을 두고 시인은 “참혹한 것 넘어서는/이 숭엄함”이라고 명명(命名)한다. 그리고 시인은 “젖은 우리의 하나님이었다.”라고 결론을 맺는다. 그렇다. 젖은 생명이다. 우리의 하느님이다. 그러니 젖을 죽여서는 안 된다. 젖이 끊어지는, 죽는 사회는 사람의 사회가 아니다. 동물의 사회도 그런 일은 없다. 젖(생명)이 끊어지게 하는 일은 엄청난 죄를 저지르는 일이다.
해설<이종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