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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자본주의의 광란

정태원 기자
등록일 2009-04-23 21:01 게재일 200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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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심야시간대에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외제 자동차로 경주를 벌여온 폭주족 300여 명이 지난주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인천공항고속도로 영종도 구간과 임진각 근처 자유로, 그리고 경기도 분당 부근 등 수도권 인근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광란의 경주를 720여 회 이상 벌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폭주족의 미친 질주는 우리 사회에서 자주 보는 현상이기는 하나 이들의 행태는 여느 폭주족들과는 다른 점들이 여러 가지 눈에 띈다.

우선 이들 가운데는 의사와 약사 방송외주제작사 PD 그리고 골프선수와 건설업자 등 이른바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과 고소득자들이 상당수였다.

이들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젊은 객기를 주체하지 못해 폭주에 나선 어린 나이는 아니다.

이 정도 경륜을 쌓자면 못해도 30대 중반 이상의 나이는 된 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들이 다중이 오가는 거리를 막고 자신들이 가진 외제차의 성능 겨루기를 한 것이다. 경주에 참가한 차들은 코닉세그와 람보르기니 그리고 페라리, 포르셰 등 외제 고급 스포츠카 들이었다.

이 차량은 생산국 현지 가격으로도 수 억원에서 10억 원 전후로 서민들은 구입은커녕 바라보기도 힘든 차들이다.

이 때문에 자동차 천국이라는 유럽지역에서도 아이들이 도로를 지나는 페라리 정도를 본 날은 운 좋은 날이었다고 할 정도이다.

이 같은 고급 차들을 몰고 나와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 때로는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로 경주를 벌인 것이다.

부모를 잘 만났든 성공한 사업가이든 돈이 많아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것까지 드러내 놓고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전용 경기장도 아닌 도로를 막고 고급 차량의 성능 경쟁을 상습적으로 해 왔다는 건 상식을 뛰어 넘는 행동이다.

이들이 저지른 행위는 단순한 객기를 넘어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되짚어 보게 하는 심각한 일이다. 이들에게는 경제난으로 온 나라에 어려운 이웃이 넘쳐나는 것도 보이지 않았고, 법과 질서도 아랑곳없었다. 오직 내가 가진 것만 자랑하면 그뿐이었다. 한 사회의 건전성 확보는 가진 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귀족의 의무)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지금 가진 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폭주족의 질주뿐만 아니라 현직 청와대 직원이 성 접대를 받고 전직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줄줄이 비리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다. 가진 부류들의 각 분야에서 천민자본주의를 향한 광란의 질주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처음 사용한 사회학적 용어인 천민자본주의는 원래 비합리적인 정치 기생적 자본주의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산업경영을 통한 가치의 생산이나 이윤증식이 아닌 낡은 성격의 자본주의를 이르는 말이자 도덕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본주의 사회를 이르기도 한다.

고급외제차를 타고 광란의 질주를 펴고 성 상납을 받은 그들이 주로 먹고 잠자는 서울 강남 일대의 거리를 보라! 식당과 유흥주점, 숙박업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이곳의 룸 살롱쯤에서 하룻밤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용은 수백 만원에서 수천 만원에 이른다.

시골구석에 살고 있는 마이너리티의 시각이어서가 아니라 정상적인 봉급쟁이, 자영업자들이 먹고 마시고 잠자기에는 너무 비싼 비용이 드는 곳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곳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것은 정치권력과 금권 등이 어우러져 접대문화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민자본주의의 극치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카이제 슈트라세나 프랑스 파리의 무랭루즈 거리 등 자본주의 국가의 퇴폐문화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곳 어디서도 국가 최고 권력기관 인사들과 자본가들이 어울려 난장판을 친다는 얘기는 들어 본 바가 없다.

차량의 속도제한이 없었던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스포츠카들이 경주를 했다는 얘기는 더더욱 들어 본 바가 없다.

서구 국가들이 나름의 사회 건전성을 유지하는 건 그들 나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도 지금의 우리 상류층을 향해 ‘귀족의 의무’ 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불법과 탈법의 광란만이라도 그만 뒀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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