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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 사조그룹 회장

김진호기자
등록일 2009-02-09 20:20 게재일 2009-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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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산기업으로서는 최대 규모로서 지난 해 연간 1조3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사조그룹 주진우 회장은 기업가로서 꿈을 이루려면 아직도 멀었다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회사이름이 사조(4兆)그룹 아닙니까. 이제 절반쯤 온 셈입니다.” 지난 15대와 16대 경북 고령·성주 국회의원을 지낸 주 회장은 아직 정치가로서도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는 마음을 비웠다고 했다.

정치판을 아는 기업인으로서, 최근 경제3단체장인 한국무역협회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는 주 회장을 만나 정치와 기업사이를 넘나 들며 느낀 심정과 근황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정치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가졌습니까.

▲초등학교 3학년때 조부가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꿈을 어릴 때부터 가졌던 것 같습니다. 정치학도로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중 부친(고 주인용 사조 창업주)이 갑자기 별세하는 바람에 나이 29세에 장남으로서 기업을 물려받으면서 기업가로 변신을 하게 됐죠. 1979년 당시 제게 남겨진 건 원양어선 한 척과 파산한 사조사(출판사), 직원 6명, 5억원에 달하는 빚뿐이었습니다. 선원들의 급여를 현실화시켜주고, 선단 구성의 효율성을 높여 5년만에 빚을 갚았습니다. 하지만 성장일로를 걷던 회사는 88년 노사문제가 얽히고, 야심차게 진출했던 참치캔 사업이 주춤하면서 삐걱거리기도 했죠. 그런 와중에 정치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1996년부터 8년간 정치인(15·16대 국회의원, 경북 고령·성주)으로 `외도'를 했죠. 그 당시는 식품업계에서의 경험을 살려 고향인 경북 성주의 농업을 일으켜 세우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경이었습니다.

-정치를 끝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의 심경은 어땠습니까.

▲2004년 경영에 다시 복귀하면서 국내 원양어업을 살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수산업이나 식품업은 농사를 짓는 것과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회사에 복귀한 뒤 공격적인 M&A를 한 것도 원양산업 선진화의 일환이었습니다. 고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은 부친의 30년 지기였고, 내게도 후견인이자 멘토였습니다. M&A 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하고 주식매매계약까지 마무리 짓기 직전에 공교롭게 김 회장이 타계하면서 잡음도 있었지만 M&A가 마무리된 지금, 양사의 통합으로 30% 가량 원가절감 효과가 생겼습니다.

-기업가에서 정치가로, 지금은 다시 정치에서 기업가로 변신했는데, 정치인 시절을 되돌아보신다면.

▲8년 세월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항상 미진하다는 느낌은 갖고 있습니다. 정치를 할 때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후원금도 안받았고, 월급 한푼 안 갖다 쓰고, 말 그대로 멸사봉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8대 총선 공천때 문제가 된 노량진 수산시장 입찰방해사건은 죄가 안되는 사건인데, 참여정부에서 문제를 삼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당시 입찰에 내가 관여한 회사 하나만 입찰하면 안된다고 해서 또 다른 회사를 입찰에 참여시킨데다 결국 입찰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도 시간이 지난 뒤 정치보복차원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당측이 입찰방해죄로 엮은 것입니다.

-회사로 복귀한 뒤 기업합병과 매출 증대 등 상당한 활약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처음 정치 입문할 때 사조산업 외형이 2천억~3천억원 정도 했는데, 회사 복귀할 때도 비슷한 매출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2004년 회사로 돌아와서는 지난 2003년 매출 3천억원대에서 5년만에 약 5배로 덩치를 키웠죠. 지난 해 1조3천억원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1조8천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 신동방, 대림수산, 오양수산 등 3개 회사와 3개 골프장(동서울CC, 제주파라다이스CC, 청도제네시스CC)을 인수했습니다. 이렇게 인수한 회사들을 모두 흑자로 돌려놔 알토란같은 우량 자회사로 자리 잡았죠.

-인수한 기업을 흑자로 전환시킨 노하우가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기업을 인수할 때는 `승자의 저주'란 말을 주의해야 해요. 금호그룹이 대한통운을 인수한 뒤 인수전의 계산과는 달라서 모회사가 위태로워지는 경우를 보면 더욱 그렇죠. 그러나 무엇보다 M&A는 실행전보다 실행후의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인수후 회사간의 화학적 결합이나 문화적인 통합 등이 중요하죠. 내가 인수한 회사들이 모두 흑자를 내고 있는 것은 이런 부분에 모두 힘을 합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양수산의 경우 인수당시 160억원 적자를 내던 회사가 지난해 50억원 흑자를 낸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 현재 사조그룹 전체로는 600억원 이익을 내고 있고, 적자기업이 하나도 없습니다.

-흔히 수산업은 사양산업이라고 하는데, 애로사항이 많을 듯 합니다.

▲국가적으로 원양어업에 대한 것들이 사양산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원양어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라, 이 나라 식량자원을 확보하는 산업으로 봐야 합니다. 사조그룹은 우리나라 수산업 쿼터 가운데 명태는 40%, 참치 50%, 대구는 100% 쿼터를 갖고 있습니다. 또 냉동식품 시장에서 1등을 하고 있는 기업으로서 어묵의 경우 국내생산량 전체의 40%, 맛살은 45%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정치할 때 보다 개별회사의 발전을 통해 국가발전을 돕는 게 더 많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도 원양어업의 경우 부채비율을 다른 산업과 같이 맞추도록 하고 있는데, 실제로 원양어선 등 고정자산에 대한 투자를 하려면 부채를 많이 질 수 밖에 없는 업종 특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골프 안치는 골프장주인'이란 별명처럼 골프는 안치면서 골프장을 인수한 이유가 뭡니까.

▲먼저 처음 골프를 칠 땐 골프장에서 훌륭한 인맥을 많이 쌓았는데, 골프 그 자체에 빠지다보니 사람은 뒷전이고 주중에도 골프를 치러가게 되더군요. 그래서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골프를) 끊었습니다. 골프장을 인수한 까닭은 간단합니다.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기업가 아닙니까. 남서울과 제주파라다이스, 중국 청도골프장을 모두 캐슬렉스 골프클럽으로 개칭했는데, 이미 자체수익으로 신규투자가 가능한 상황입니다. 앞으로도 청주를 비롯해 2곳에 신규 골프장을 설립할 계획입니다.

-최근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하마평이 돌던데요.

▲한국무역협회에는 제가 지난 95년부터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부회장단 19명에는 3대상사(삼성, 현대, LG상사)대표, 지방회장 3명외에 12명의 부회장이 있는데, 이 가운데 70대가 5명입니다. 결국 일 할 만한 사람은 7명 정도이고, 그 가운데 정치판과 기업 실무를 겸비한 사람은 저 외에는 없기 때문에 저 스스로 무역협회장을 맡아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많습니다. 그러나 경제3단체장에 해당하는 무역협회장의 경우 정권핵심부에서 결정하게 되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만 무역협회장이 정부(특히 지경부)의 심부름이나 하는 단체가 아니라, 창의력을 갖고 정책을 도출해서 밀고 나가도록 하려면 민간에서 맡도록 하는 게 옳은 방향이란 얘기는 꼭 해두고 싶습니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사조산업의 러시아 지사를 오양수산의 미국 지사와 연결해 글로벌 수출 전진기지로 삼고자 합니다. 또 앞으로도 시너지가 확실한 기업이 있다면 M&A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수산업 관련 쿼터도 더 많이 따서 수산자원 전쟁에도 앞장 설 생각입니다. 석유자원은 보호주의가 되면 그 나라의 소유가 되지만, 수산자원은 해당 국가 주민으로부터 사오면 되는 특성이 있어 쿼터확보가 관건이 된다는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김진호기자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은

1949년 8월 28일 경북 성주 출생으로 올해 환갑을 맞은 주진우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이른바 `KS마크' 엘리트다. 미국 콜롬비아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정치학도로서 부친의 가업을 물려받아 사조그룹을 이끌어왔으며, 정치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15대 국회의원으로 입문해 16대까지 재선국회의원을 지냈다. 17대와 18대에도 고령·성주·칠곡에서 지역구 출마를 노렸으나, 낙마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 1995년부터 현재까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한국원양어업협회 고문,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한국무역협회 e-Biz 특별위원회 위원장도 새로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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