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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르트 대제

연합뉴스 기자
등록일 2008-03-07 16:15 게재일 200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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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크라크라프트·살림·1만2천원

2m에 이르는 건장한 신체, 넘치는 정력. 서유럽에는 아시아에 가까운 변방 정도에 지나지 않는 러시아를 일약 세계사 주축으로 끌어올린 로마노프 왕조 제4대 황제 표트르(재위 1682∼1725)는 그에 어울리게 ‘벨리키’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영어로 옮길 때 ‘the Great’이라 하고, 국내에서는 이를 대제(大帝)라 번역한다.

그렇지만 그가 걸어간 길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676년 1월, 아버지이자 차르인 알렉세이가 사망했을 때 표트르는 겨우 3살이었다. 차르 자리는 알렉세이 아들 중 연장자인 표도르에게 돌아갔으나 병약한 신임 황제는 1682년 4월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에 10살된 동생 표트르가 차르에 즉위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실권이 있을 리 없는 표트르는 즉위 직후 이복 누나인 소피아 대공주(차레브나)가 주도한 쿠데타에 든든한 후견세력 상당수를 잃은 데다 차르 자리도 절반을 내어 놓아야 했다. 소피아가 표트르의 이복형인 이반을 공동 차르에 앉혔기 때문이다. 러시아사에서 유례없는 ‘공동 차르’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2007년 미국 일리노이대학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미국의 저명한 러시아사 역사학자 제임스 크라크라프트(James Cracraft)는 ‘표트르 대제’(살림 펴냄)라는 제목으로 최근 국내에 번역된 ‘The evolution of Peter the Great’(표트르 대제의 개혁)에서 표트르의 다양한 면모 중에서도 ‘유럽화주의자’에 초점을 맞춘다.

크라크라프트는 표트르야말로 “러시아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독보적인 존재이다. 또한 근대사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할 때 그의 위상은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까지 부각된다”고 하면서 그 구체적 증거들로 다음과 같은 대목을 든다.

우선 그는 치세기간 러시아를 유럽의 국가체제에 편입시켰다. 이를 위해 러시아 군주로는 처음으로 유럽순방에 나서기도 했으며 그 문화수입에도 열성적이었다. 군사교육과 체계를 혁신했으며, 해군을 창설했다.

귀족 중심 정치를 혁파해 합리적인 관료체제로 바꾸었다. 문자혁명과 인쇄혁명을 통해 계몽의 기틀을 닦았으며 학문을 장려함으로써 러시아 문화혁명을 주도했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영토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크라크라프트에 의하면 러시아가 나중에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표트르가 닦은 러시아의 저력에서 힘입었으며 푸시킨(1799∼1837)을 비롯한 러시아문학이 만개하게 된 원천도 그가 마련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러시아인들은 표트르에게서 ‘위대한 러시아의 약속’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이주엽 옮김. 260쪽. 1만2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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