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도를 놓고 보면 동해안은 남해안이나 서해안에 비해 해안선이 단조롭기 짝이 없다. 섬도 거의 없고, 해안선이 복잡하지도 않다. 그런데 유독 포항 지역의 해안선은 예외다. 울진, 영덕 쪽에서 밋밋하게 내려 긋던 해안선은 갑자기 육지 쪽으로 움푹 패여 들어가 있다.
여기가 바로 영일만이다. 왜 이 곳이 움푹 패이게 되었을까? 그 까닭을 설명한 이야기가 '영일만의 형성' 신화다.
옛날 왜국에 힘 센 역사(力士)가 한 명 있었다. 이 역사는 일본 전국을 두루 다니면서 힘 겨루기를 일삼았다. 힘이 세다는 일본의 모든 장수를 굴복시킨 후, 조선으로 건너왔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강한 자가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그 곳으로 달려가 힘을 겨루어 모두 물리쳤다.
어느 날, 영일땅 운제산 대각봉에 다다르니 동해가 활짝 열리고 수평선 너머에 고국 일본이 보일 것만 같았다. 문득 고향과 부모 형제 생각에 젖어 있는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한 역사가 버티고 있었다. 키는 하늘을 찌를 듯하고 몸은 태산과 같았으며, 눈은 혜성같이 빛났고, 팔다리는 동철의 갑주를 둘러놓은 것 같았다.
이 역사는 뇌성벽력 같은 소리로
“네가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역사인가?”
“그렇다, 너는 누구냐?”
“요사이 이 나라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힘을 과시하는 왜인이 있다더니 바로 너로구나. 나는 조선의 창해역사다. 너를 찾아 수십 일을 헤매다가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되었구나.”
창해역사와 일본역사가 치고받고 싸우니 운제산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 같았고, 바람과 먼지가 천지를 뒤덮었다. 하늘을 날고 땅을 치며 싸우다가 일본역사가 넘어지면서 손을 짚었는데, 그 곳이 그만 움푹 꺼지면서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호수가 되었다. 이 호수가 지금의 영일만이 되었다.
일본역사는 창해역사 앞에 무릎을 꿇고 군신(君臣)의 예를 갖추게 된 바, 여기서 창해역사는 임금이 되고, 일본역사는 신하가 되었다. 그 장소가 바로 운제산 정상부에 있는 대왕암(大王巖)인데, 대왕암이란 이름은 창해역사가 일본역사를 이이고 왕이 된 데 연유한다고 한다.
위의 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키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몸집이 태산 만하며, 손바닥 하나가 영일만 만하다 하니 참으로 대단한 거인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이상하고 엄청나게 큰 몸집을 가진 초자연적 인간의 존재?생활?행동 등에 관한 신화인 거인신화(巨人神話)다. 이러한 거인신화는 세계 곳곳에 전해진다.
중국의 고대 천지창조 신화에는 천지개벽 때 달걀모양을 하고 우주 안에서 태어났다는 태초의 거인인 반고(盤古) 설화가 있다. 반고의 키가 자람에 따라서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고 반고의 시체로부터 바람, 구름, 천둥, 비, 태양, 달, 산, 강, 풀, 나무, 암석 등의 만물이 생겼다고 한다. 한국에는 우리나라 산천의 유래에 관한 신화가 있다.
옛날에 거인이 배가 고파 헤매다가 남쪽 곡창지대에서 대접을 받아 배부르게 밥을 먹었다. 오랫동안 굶다가 배가 부른 거인은 기뻐서 춤을 추었다. 그러나 거인이 어찌나 컸던지 그만 해를 가리게 되어 그늘 때문에 농사에 지장을 주고 말았다. 화가 난 사람들이 거인을 내쫓았다. 거인은 눈물을 흘리며 북쪽으로 갔다. 그러나 도중에 다시 배가 고파 오자 돌, 나무 등을 먹었다. 이 때문에 거인이 배탈이 나서 먹었던 것을 토하거나 설사를 하였다.
거인이 토한 배설물은 백두산이 되고, 흘린 눈물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되었다. 또 설사가 나서 흘러내린 것이 태백산맥을 이루었고, 대변의 한 덩어리가 튀어 제주도가 생겼으며, ‘휴’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만주 벌판이 되었다.
또 거인은 자기를 대접해 주었던 남쪽 사람들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뜻에서 거름을 주기 위해 백두산에 올라 오줌을 누었다. 그러나 이 오줌이 홍수가 되어 북쪽 사람은 남쪽으로 밀려 내려오고, 남쪽 사람은 떠내려가 살아남은 몇 사람이 일본인의 시조가 되었다. 북쪽에서 떠내려 온 사람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한국인의 시조가 되었다.
어쨌든 '영일만의 형성' 신화에 의하면 영일만은 일본역사와 조선의 창해역사가 운제산 대각봉에서 싸울 때 일본역사가 넘어지면서 손을
짚어 움푹 꺼진 곳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어 옴으로써 형성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함께 우리 겨레의 민족적 우월감이 묻어
난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담겨 있는 걸로 봐서 이 신화는 고대에 형성된 '영일만의 형성' 신화가 근세 이후에 인위적으로 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창원 향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