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가장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新羅) 천년 그리고 수도 경주(慶州). 신라란 국호는 제15대 기림왕 10년(서기 307년)에 칭했다.
이후 경주는 신라의 도읍으로 금성(金城)이라 하여 56대 992년간 이어 왔다.
신라는 망하기 전 고구려와 백제 등 삼한시대를 통일한 유일한 국가였고 그 주체(主體) 세력(勢力)은 경주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이들은 권력(權力)의 정통성(正統性)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를 경주에서 꽃피웠고, 그 산물들이 현재까지 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어 당시의 번성함을 엿 볼 수 있다.
특히 잔존하는 문화유적들은 당시 권력자(權力者)들이 문화치적(文化治積)을 얼마나 중요시 했나를 경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더욱이 당시 경주의 인구가 100만 이상 됐다는 것이 왕경(王京)이나 조방제(造謗制)에서 확인되고 있고 이를 연구하기 위해 고고학계나 사학계가 연일 골똘하다.
그러나 찬란했던 신라 천년 수도 경주의 옛 그림은 현재까지 역사문헌이나 실존하는 유적들로 입증되고 있는데 반해 ‘오늘 경주’의 모습은 어떠한가.
▲오늘의 경주는 국책사업에만 목매고
1천년 전에 인구 100만 이상 되는 거대한 도시가 현재는 30만도 채 못 되는 등 초라하기 그지없는 소도시 규모로 전락했다는데 안타까움을 더 하고 “산천은 유구한데 인걸은 온데 간 데 없다”는 것으로 책임소재를 묻고 싶은 심정이다.
시민들은 아직까지 ‘천년 고도에 살고 있다’는 보수적인 자부심만 팽배할 뿐 진취적(進取的)인 사고(思考)나 혁신적(革新的)인 사고 부족이 오늘의 경주를 이르게끔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탄(自嘆)도 나온다.
따라서 이런 보수적 자부심이 ‘궁핍한 경주’를 만들었다 해도 무리가 없을 성 싶고, 이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시민들이, 2차적으로는 지역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몫이라 해도 큰 부담이 없을 성 싶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 경주는 지역발전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국책사업 유치에만 목을 매고 있다.
여기에는 지자체를 비롯 기초의회, 상공계는 물론이고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국책사업을 유치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아 붓고 있다.
하지만 지역 전체가 왜 이렇게 국책사업에 ‘올인’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경주시민 모두는 아는 사실이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경주 경제가 ‘최악’이라는 표현이 적합하고 이에 대한 타개책은 ‘국책사업유치가 경주 경제 활성화’라는 청사진으로 처방되는 현실에 이르게 됐다.
종전까지만 해도 관광산업에만 주력하다가 관광경기가 하락하니 이마저 경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도 뜸하니 유적지 주변은 한가하고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더욱이 제조업이라고는 달랑 용강공단 뿐인데 이마저 일부 업체들이 중국 진출설까지 나도니 지역경제는 위축의 벼랑에 서 있었는지 오래된 이야기다.
찬란했던 신라 천년의 영화는 온데 간 데 없고, 밤이면 시내 상가에 인적이 드물어 상인들도 이 분위기에 익숙한 표정들이다.
이런 가운데 방폐장을 유치하려고 경주 전체가 떠들썩하다.
지방의회에서는 처음으로 경주시 의회가 방폐장 유치를 의결하고 이에 시민단체들도 지역 현실을 감안하여 이에 동참하여 국책사업 유치단을 구성했다.
시민 대부분이 여기에 매진하는 것을 보면 지역경제의 수준을 가늠케 하고 있고, 이를 꼭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 속에 사는 천년고도 시민들이 어찌 보면 불쌍하기도 하다.
경주 인근 포항이나 울산의 경기는 전반적으로 상승분위기를 타고 있다.
대형 산업산지가 있어 경주 경제와는 비교가 안 되며 특히 이 지역에서 넘쳐난 돈이 경주에 몰려와 부동산 투기를 할 정도여서 경주시민들은 그저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역사문화가 경제발전의 걸림돌
그래서 시민들은 오늘의 경주가 이 지경에 처한 것에 대해 원망하는 표정이 역력한데 이 중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매장 문화재지역이니 개발은 엄두도 못 내고, 개발할 경우 필연적으로 발굴비라는 준조세(準租稅) 고정비용도 부담해야 하니 골빈 사업자가 아니고서는 뭣 때문에 경주에다 투자를 하겠느냐라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부나 지자체장, 그리고 지역 유지들이 어떻게 받아드리고 후손들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나도 묻고 싶다.
지역 경제에 밝은 인사 이야기다.
“경주는 온 천지가 지뢰 밭 입니다. 이 지뢰가 지역 발전의 최고의 걸림돌입니다. 그러면 이 지뢰를 제거해야 하는데 누가,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 것인지를 수십 년이 지나도록 어느 누구도 해법을 내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형국이 이러하다보니 지자체 재정자립도는 30%에 이르고 자체 투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보니 지자체와 시민들은 기대고 쳐다볼 곳은 중앙정부 뿐이어서 현실을 극복하는데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역사 불이익에 대한 보상은 정부가
이에 백상승 시장 체제 출범 이후 경주 중장기 경제 회생책으로 내놓은 것이 ‘경주 역사문화도시’ 지정인데, 이마저 주무 부서인 문광부와 기획예산처에서 예산 규모를 확정치 못해 밀고 당기고 하는 모양이다.
이에 시민들은 피폐된 경주 탈출을 위해 대통령이던지 아니면 시장이던지 특단의 대책 즉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시민들은 경주 살리기와 미래를 흑묘백묘(黑猫白猫) 논리에다 접목시키고 있는 극한수(極限數)를 두고 있다.
이는 여당, 야당도 가릴 것 없고 현 시장이던 후임 시장이 될 인사던 오직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층을 찾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따라서 통치권이나 정치권이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지 말고 진정으로 문화를 사랑하는 정권이나 공당으로 인정받으려면 ‘신라문제’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 성숙된 정치는 역사문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어쨌든 찬란한 천년문화를 사장(死藏)시킬 것인가 아니면 부활(復活)시켜 전 세계 만방에 알릴 것인가에 대해 이제는 서로가 곰곰이 따져 봐야 할 시간인 것 같다.
모 사학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성공한 권력으로 평가받으려면 문화, 특히 역사문화가 기초가 된다.”
<윤종현 경주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