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스승에게 묻는다. “저기 흔들리는 것은 나뭇가지입니까? 바람입니까?” 스승이 대답한다. “흔들리는 것은 나뭇가지도 바람도 아니라, 네 마음이다. 그것을 보는 너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여기 한 순간의 달콤함에 모든 인생을 걸어버린 남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쓰디쓴 커피의 진한 맛 뒤에 오는 야릇한 달콤함이랄까. 강사장의 오른팔로써, 실수 없는 해결사 역할을 해왔던 김실장은 순간의 흔들림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흔들림은 욕망이다. 그리고 욕망은 속도다.
속도는 오르막보다 추락에 가깝다. 욕망은 분출이며, 달콤함이다. 그 달콤함 뒤에 찾아오는 씁쓸함은 오래도록 남는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느와르다. 느와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느와르라고 표방한 것은 전략일 뿐이다. 재구성된 서울의 야경은 생경하면서도 감각적이다. 단색의 복도를 지나, 원색의 문을 열며 지나가는 동선들은 단조로우면서도 아름답다. 여기에 숱한 남자들 속에서 스스로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고 있는 조연들이 있어서 더욱더 매끄럽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던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빠지는 모습은 길고 좁은 복도를 굽이굽이 걸어가는 김실장의 영화 초반 장면처럼 정교하다. 그리고 그 인간들의 갈등구조는 화면 가득 흘러 내리는 핏빛만큼이나 선명하다.
조직의 떠오르는 2인자와 조직에 의해 제거 당할 위기에 처한 모습. 말끔한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어두침침한 뒷골목에 놓인 모습. 달콤함과 씁쓸함은 찰나의 선택에 의해 규정되어 진다. 그리고 자신이 놓인, 존재가 처한 상황에 맞추어 인간은 변신하고 추락해 간다. 엄청난 속도로.
그 속도를 위하여 감독은 영화의 이야기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든다. 조직의 보스와 보스의 명령으로 보스의 애인을 감시하다 짧게, 찰나에 흔들려 버리는 오른팔. 그리고 가차없이 행해지는 보스의 테러.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 결말은 중요하지 않다. 죽거나 살거나, 혹은 복수하거나 못하거나. 그 과정들은 언제든지 상상할 수 있다. 바로 이 상상의 지점에서 김지운 감독은 재주를 부린다. 누구나 뻔히 상상할 수 있는 그 지점에 그 뻔함을 어떻게 멋스럽게 만들어 낼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 찰나의 흔들림. 혹은 선택에 있어서 본인도 그 흔들림을 감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했기에 복수를 위해 강사장과 마주한 김선우가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이다. 결국 죽고 죽이는 문제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깊은 밤 잠에서 깨어 울고 있는 제자에게 스승이 묻는다.
“왜 울고 있느냐?”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너무나 달콤하여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느냐?”
“너무나 달콤하여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꿈이기 때문입니다.”
아! 쓰디쓴 커피에 녹아든 달콤한 설탕맛을 어찌 다시 찾을까.
<김규형·(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 사무차장>
/자료제공=포항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