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테두리 안에 공익을 해치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공공의 적이며, ‘사회적 최소한’인 법으로 그들을 응징하니 정의는 살아 있다. 법과 주먹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공공의 적에 대한 공분을 끌어 올려 결국엔 살아있는 정의를 보여주고야 만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아무래도 ‘공공의 적2’에서 검사들이 읊었던 대사와 흡사하다. 어쩌면, 공공의 적이라는 명목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할 파렴치하고 반인륜적인 이를 지목하여 관객의 분노를 이끌어 영화에 몰입하게된 그 과정까지는 주효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2’는 정의는 있으나 울림이 없고, 어느 공익영화의 입바른 대사들만이 가득하니, 가슴을 치지 않는다.
형사 강철중. 전편에서 단순무식 과격의 표상이며, 법과 절차보다 주먹을 앞세웠던 형사. 대사의 절반이 욕이었으나 적어도 형사 강철중에게는 누군가를 훈계하거나 계도하고자 하려는 대사는 없었다. ‘패륜아’에 대한 분노가 없었다면 어쩌면 형사 강철중은 공공의 적에 그 리스트를 올렸을 지도 모른다. 그 밑바닥에서, 공공의 적과 일반인이 구별되지 않는 모호한 지점에서부터 출발이었기에 형사 강철중에 대한 매력이 있다.
검사 강철중. 전편의 패륜아에서 정경유착과 사학재단비리로, 개인적인 범죄에서 사회적 범죄로 확대된 적을 만나 형사에서 검사로, 법집행의 최고기관으로 바뀐다. 이렇게 사회적 공분을 키워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니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어야할 감동과 특유의 유머는 요원하다.
형사는 사건의 최일선이며, 무대가 현장이다. 그에 반해 검사는 사건의 지휘자며, 무대가 검사실의 책상이다. 그러하기에 전편보다 더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구조를 엮어야 하고, 그 구조 속에서 공분을 이끌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야기 구조는 미련할 정도로 전편과 닮아 있고, 범죄의 유형과 크기가 바뀌었을 뿐, 공공의 적이 내뿜는 악마적인 매력은 간데없고 ‘귀족’과 ‘천민’만을 연발할 뿐이다. 전편의 악당 조규환이 가졌던 양면성은 찾아볼 길 없이, ‘공공의 적2’의 악당 한상우는 그냥 악당이고 공공의 적일뿐이다. 다시 말하면 직선적이고, 단편적인 인물설정이다.
현실의 다양성과 인간이 가진 이중성, 일반인들이 느끼는 대한민국 검사의 사회적 지위는, 사회정의를 위한 오직 한 목표를 위해 허구적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왜 국가권력은 여전히 두렵고, 내 주위가 아닌 멀리, 더 높이 있는 존재로 느껴지는가를.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대한민국 검사에게 ‘호부호형’을 허하라.
<김규형·(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 사무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