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림축구’로 주성치 팬의 저변을 확대하던 그가 홍콩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쿵푸허슬’을 들고 강호로 돌아왔다.
삭풍이 몰아치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강호의 고수들은 공중을 가른다. 복수를 위해서 칼을 갈고, 사부를 만나 비법을 전수하고 폼나게 돌아와 각종 무술의 초식을 화려하게 펼치니, 악은 뿌리 뽑히고 정의는 살아 있음을 만천하에 알린다. 그리고 우리의 영웅은 석양을 등지고 사라지더라.
다시 강호의 공식은 1940년대의 중국으로 그대로 옮겨 간다. 혼란한 시기를 틈타 ‘도끼파’가 상하이를 접수하게 되고, 싱(주성치)은 물삼겹과 함께 조폭을 꿈꾸며, 하층민들이 모여사는 ‘돼지촌’으로 흘러든다. 그리고 싱의 주접으로 인해 도끼파와 돼지촌간의 혈투가 시작되고, 돼지촌에 숨어 살던 강호의 고수들이 나타나고, 이들의 제거를 위해 도끼파는 킬러를 고용한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아니다. 어차피 주성치 영화에 있어서 스토리를 알고서 영화를 보는 것과 모르고서 영화를 보는 것은 별반 큰 차이가 없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 푸짐하게 차려진 볼 것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강호에 숱한 화려한 무공들이 넘쳐날 때, 화장실 유머와 유치함의 극치를 갈고 닦던 주성치가 이제 드디어 강호를 평정하고, 그가 가진 장점을 그 극한까지 밀어 올리는 모습을 ‘쿵푸허슬’에서 본다. 상투적인 것이 비범함으로 바뀌고, 유치함이 비장한 코믹으로 바뀌며 엄청난 내공을 머금었다 화려하게 뿜어져 나오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이다.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다. 짐짓 심각한 자세로 영화를 바라볼 필요는 더더욱 없다. 어차피 주성치 영화에서 찾아야할 것이 진지한 인생의 철학적 담론이나 골치 아픈 이데올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막을 따라 꼬이고 꼬인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주성치 영화에 그러한 이야기 구조가 존재할 리가 만무하다.
이제 영화관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80년대 우리나라의 극장가를 수놓던 홍콩영화의 변두리에서 시작하여 숱한 홍콩영화의 스타들이 명멸해간 그 자리에 유유히 옷자락 휘날리며 돌아온 주성치를 바라보며, 박장대소할 일만 남은 것이다.
<김규형·포항지역사회연구소 사무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