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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성폭력 관련 법, `타이틀 나인`(title 9)

등록일 2015-04-14 02:01 게재일 2015-04-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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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며칠 전 하버드 로스쿨 석지영 교수의 `런치 토크`(lunch talk)을 듣게 되었다. 내용은 미국의 `성폭력 관련 법`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성폭력과 성희롱을 바라보는 것과는 매우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고, 학내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등에서 여러 가지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학내 성폭력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대 수학과 교수가 학내 성폭력으로 파면되었다. 그는 또한 200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쳐 여학생 9명을 성추행한 혐의(상습 강제추행)로 지난해 12월 구속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고려대에서도 교수가 대학원생을 성추행했다가 사표를 제출하였다. 서울대 교수의 경우 성폭력으로 처음 구속된 사례라 더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폭력 문제는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서 다뤄지며, 이 법은 주로 성폭력의 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이 문제는 `title 9`이라는 시민의 권리에 대한 법으로 다루고 있다. `title 9`은 1972년에 개정된 미국 교육법의 한 부분이며, 2002년에는 `the Patsy Mink Equal Opportunity in Education Act`로 이름이 수정되었다.

석지연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성폭력`은 성에 근거한 기회의 배제 및 차별의 문제로 간주된다고 한다. 즉 성희롱이나 성폭력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업무을 원만하게 수행하지 못하거나 회사 출근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면, 이는 그 사람을 직장으로부터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내 성폭력이나 성희롱도 학생을 학업이나 각종 혜택으로부터의 배제와 차별 행위로 간주된다.

또한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 방법에서도 역시 `미국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경우 학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학내의 `인권 센터`나 `성폭력 방지 위원회` 등을 통해서 학교에 진정이 들어가고, 될 수 있으면 외부로 소문이 나서 학교의 이미지가 나빠지지 않도록 조용히 교수의 사표를 수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각계 관계자들의 피해자에 대한 회유, 협박 등이 개입하기 때문에, 실제 가해자가 학교로부터 해임이나 징계를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성폭력 방지와 문제 해결을 위한 학교의 의무를 강하게 규정하고 있다. 만약 학내에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학교가 이를 해결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점이 적발이 되면, 정부는 `title 9`에 근거하여 연방 재정 지원을 끊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학교는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금이나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석지영 교수가 한 여러 가지 말들 중에서 이 부분에 가장 귀가 솔깃했다. 한국에서 `사립대학 총 수입에서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16.7%`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수치는 국고보조금이 대학 수익활동의 중요한 원천 중의 하나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학내에 성폭력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학교가 이를 은폐하거나 잘 처리하지 못하고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할 때, 정부가 국고보조금 지원을 중단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고보조금의 중단은 학교 재정에 큰 타격을 줄 것이므로, 학교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학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될 것이다.

최근 학생들과 학내 생활과 관련해서 정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대화에서 교수로서 내가 아는 학교와 학생들이 아는 학교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성폭력 문제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학생들은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미국에서 성폭력을 `차별 금지 및 기회균등`의 침해행위로 다루고 있는 것을 참고하여, 정부와 교육부는 단지 성교육이나 피해자 보호와 같은 소극적인 대처가 아니라 `시민의 권리 보호`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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