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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제22번 悲歌...김춘수

지금 꼭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고 싶은데 너는 내 곁에 없다. 사랑은 동아줄을 타고 너를 찾아 하늘로 간다. 하늘 위에는 가도 가도 하늘이 있고 억만 개의 별이 있고 너는 없다. 네 그림자도 없고 발자국도 없다. 이제야 알겠구나 그것이 사랑인 것을, - 김춘수 시집 `쉰한 편의 悲歌`(현대문학·2002)대여(大餘) 김춘수 시인. 그가 우리들 곁을 떠난 지가 벌써 5년이 다 되어 간다. 김춘수 시인이 떠난 후 대여(大餘)라는 말의 뜻처럼 한국 시단에는 큰 여백이 생겨난 것만 같다. 사물(事物)의 본질 인식을 위해 자신의 언어를 가파른 벼랑으로 끝없이 몰고 갔던 `꽃`의 시인 김춘수. 우리 시사(詩史)는 그를 모더니즘 시인이라 부른다. 그런 그가 모더니즘 혹은 `무의미의 시`라는 긴 길을 에돌아 우리 삶의 직접성에다 자신의 언어를 부려놓고 있다. 그것은 쉰다섯 해를 시인과 삶을 함께 했던 아내의 죽음(1999년) 때문이었다. 부인과 사별(死別) 후 시인은 2년 만에 새 시집 `거울 속의 천사`(민음사·2001)를 펴냈다. 평소 그의 시작(詩作)에 비하면 놀라울 창작열이었다. 지금 여기에 없는 아내(=천사)를 찾아가는 시인의 간절함과 그 천사가 자기 옆자리로 찾아드는 미세한 기미를 애절하게 붙든 언어의 흔적이 시집의 내용물이다. 89편을 2년 만에 펴낸 것은 여든의 나이에 접어든 시인의 대단한 시적 열정과 아내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죽은 아내를 만나는 작은 기미를 시인은 `an event`라고 명명했다. 사건이라는 이 `an event`라는 제목의 시는 유고 시집 `달개비꽃`(현대문학·2004)에도 똑 같은 제목으로 새롭게 그려졌다. 시집 `거울 속의 천사`이후 또 1년 만에 발간한 시집이 `쉰한 편의 悲歌`(현대문학·2002)였다. 인생 말년에 릴케가 `두이노의 비가`를 남겼다면 김춘수는 `쉰 한 편의 悲歌`를 세상에 내놓았다. 대여 김춘수 시인 말년의 시편들은 전부 그의 아내가 쓰게 한 것은 아닐까. 우리 곁을 떠나간 시인은 천상에서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아내를 만났을까?해설이종암·시인

2009-07-08

두루미천남성-그대 생각 ... 김인호

그대 자리 온기는 그대로인데 손 내밀어 보면 그대는 없고 점, 점, 희미하게 지워져 가는 따뜻했던 날들의 추억 그대는 지워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차마 지울 수 없구나 해 설핏 기울고 더는 기다릴 수 없어 날아올랐지만 떨칠 수 없는 그대 생각 - 김인호 야생화 포토포엠 `꽃 앞에 무릎을 꿇다`(눈빛·2009)다음 카페 `섬진강`의 주인장 김인호 시인이 최근 펴낸 세번째 시집 `꽃 앞에 무릎을 꿇다`를 우편으로 보내왔다. 시집 안쪽에 “꽃의 말을 전합니다”라는 고운 말씀을 보태어 보내준 김인호 야생화 포토포엠 `꽃 앞에 무릎을 꿇다`, 그 제목의 의미가 참으로 간절하게 와 닿는다. 시집의 편재는 일반 시집들에 비해 특별나다. 야생화클럽 운영위원이기도 한 김인호 시인이 수년 동안 수행자처럼 우리나라 야생화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직접 찍은 사진 위에, 혹은 옆에 시인이 직접 쓴 시가 놓여있다. 시집 속에는 컬러로 인쇄된 68 송이의 야생화와 그 꽃을 노래한 68편의 창작시가 수록되어 있다. 또 개별 꽃들에 대한 설명도 첨부되어 있어 꽃과 사귀는데 좋은 공부가 되고, 일급의 사진 솜씨로 꾸며져 있어 시집이 참 예쁘고 곱다. 당신은 `두루미천남성`이라는 야생화를 아는가? 5~6월에 꽃을 피우는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이 야생화는 꽃이 피었을 때 그 전체 모양이 마치 두루미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모습이어서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김인호 시인이 노래한 시 `두루미천남성`은 슬프기 그지없다. “그대 자리 온기는 그대로인데/손 내밀어 보면 그대는 없고”라는 시의 첫 구절에서 보듯 날개를 펼친 두루미처럼 떠나 가버린 사람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노래다. “나는 차마 지울 수 없구나”와 “날아올랐지만 떨칠 수 없는 그대 생각”의 시구에서 나는 첫사랑의 상처를 평생 안고 가는 이의 내면의 무늬를 본다. 또 무릎을 꿇고 동그란 눈을 뜨며 들꽃과 대화를 나누는 시인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와 소주잔을 기울였던 게 언제였던가? 그립다. 해설이종암·시인

2009-07-07

오리...이윤학

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 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내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나는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나는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 현대문학 2004년 9월호시의 첫 행에서 보듯 시인은 호수와 오리를 보고 있는 제3의 화자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시가 진행되면서 그 시적 화자는 오리와 동일 인물로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그래서 이 시의 실제적 화자는 오리다. 이 오리의 상대는 그가 머물고 살았던 호수다. 오리와 호수, 이 둘의 상관관계는 가학(加虐)과 피학(被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오리인 `내`가 호수에 머물며 사는 동안 호수인 `너`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끝내 그 호수를 떠나게 되었다는 게 시 `오리`의 전체 내용이다. `너`라는 처소에 머물다 떠나버린 `내`가 그 때 너와 나의 어긋난 관계에 대한 회억(回憶), 여기에는 지난 삶의 행위에 대한 시적 화자의 후회와 반성의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 작품에서도 이윤학 시인의 시적 특장인 진정성과 묘사의 시작 태도가 두드러진다. 시인은 섣불리 독자에게 무얼 전달하려거나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객관적으로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그렇게 그려낸 풍경 위에 시인 자신의 솔직한 삶을 가만히 얹어놓고 있다. 이를테면 풍경의 내면화다. 당신의 넓은 마음에 “나는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와 “내 날개는/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라는 시인의 금이 간 내면의 저 말이 가슴 아프게 한다. 호수를 떠난 오리의 몸에는 호수의 물결이, 호수에는 헤엄쳐 다니던 오리의 몸짓이 오래 남아 아프게 할 것이다.해설이종암·시인

2009-06-29

夢魂 ... 이옥봉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半成沙 (문전석로반성사)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 시문집 `가림세고(嘉林世稿)``옥봉집(玉峰集)`은 조선 선조 때 옥천 군수를 지낸 이봉의 서녀(庶女)로 태어나 조원의 소실(小室)이 된 숙원이씨 이옥봉의 시집이다. 조원·조희일·조석형 3대(代)의 시문(詩文)을 묶은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한다. 유교적 가부장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서출(庶出)로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것 때문에 시를 마음껏 써보지 못하고, 또 시 창작으로 남편과 영원히 헤어져 살아야 했고 끝내 자신이 쓴 시를 안고 바다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 비운의 여류 시인 이옥봉. 그가 남긴 32편의 한시는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칠언 절구의 `몽혼(夢魂)`도 기다림과 그리움의 노래다. 임을 만나기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니 꿈속의 넋을 빌리는 가정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애절한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꿈속의 넋인 몽혼(夢魂)이 그리움에 목메어 하도 찾아 달려가 당신 사는 문 앞의 돌길이 모래가 되었을 것이라는 저 여인의 깊은 한(妾恨多)을 어찌할꼬? 시적 화자가 부르는 이 사랑의 노래가 너무 애틋하고 절절하다. 비운의 모습으로 끝나버린 여인 이옥봉의 삶과 그 한이 안타깝고 애절타. 내 전생(前生) 또 그 전생의 삶에서 이러한 여인을 남겨 두지는 않았는지? 그녀의 다른 시 오언 절구 `규정(閨情)`이라는 작품도 애절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노래다. “有約來何晩(돌아온다 언약해놓고 어찌 이리 늦나요.)/庭梅慾謝時(뜰에 핀 매화는 벌써 시들려 하는데)/忽聞枝上鵲(문득 가지 위의 까치소리 듣고서)/虛畵鏡中眉(부질없이 거울 보며 눈썹 그려요.)” 이 시의 화자는 까치 우는 소리에 새로 화장을 하며 임을 기다린 게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부질없는 것인 줄 알면서 또 거울을 보며 눈썹을 그리는 저 여인의 마음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해설이종암·시인

2009-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