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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가장 아름다운 말은 감사입니다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고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며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고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축복이 아니다. 나에게 축복이 되는 일이 많았지만 감사하지 못해 축복을 축복으로 받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매사에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하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브라질 사람들은 ‘오브리가도’(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한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틈만 나면 ‘오브리가도’를 외친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오브리가도’라고 한다.미국 사람들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땡큐’(감사합니다)라고 한다. 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생활 속에서 작은 일에도 ‘땡큐’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 50개를 선별했는데 그중에서도 ‘땡큐’가 28퍼센트로 1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감사가 몸에 배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성인이 되면 평균 2만6천개의 단어를 알게 된다고 하는데 그중에 다른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최고의 언어가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물론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인간의 언어도 ‘감사합니다’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혀에 길들기 전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라는 말도 있다.세상에는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이가 많으나 감사하고 그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적다. 우리 속담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라는 말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말해 주는 말이다.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에게 각각 바구니를 주고 한 천사에게는 기도를, 한 다른 천사의 바구니에는 감사를 담아오라고 세상으로 보냈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 두 천사가 바구니를 가지고 돌아왔는데 기도를 담은 바구니는 더 이상 담을 수 없게 가득 담겼고, 감사를 담은 바구니에는 겨우 세 개의 감사만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얼마나 감사하는 생활이 없는가를 드러내는 예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감사는 절로 되지 않는다. 감사는 해야 한다.아침에 일어나 새날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저녁에는 하루를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며 주일에는 일주일 동안 험한 세상에서 지켜주시고 은혜 베푸심과 자녀들을 돌봐주시고 지켜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은혜가 크고 놀라운데 조금 희생하고는 피해의식에 빠지고 원망을 잘한다. 우리가 감사하지 않고 원망과 불평을 할 때 입이 튀어나와 찐 조기가 된다.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크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아야 하겠다.

2020-11-17

염소새끼를 어미 젖에 삶지 말라

강영식 포항 하울교회 담임목사아프리카 원시족은 염소의 젖을 끓여먹지 않는다. 우유를 끓이는 행위를 생명을 앗아가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 모습을 어미염소가 목격하게 되면 더 이상 우유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지역 구분 없이 대부분의 원시족들이 가지는 공통된 생각이다. 이런 행위를 공감주술, 또는 감응주술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주술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프레이져를 비롯한 인류학자들의 주장이다.출애굽기 34장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십계명과 달리 “새끼염소를 어미젖에 삶지 말라”는 것을 마지막 계명에 포함하고 있다. “새끼염소를 어미젖에 삶지 말라”는 것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생소한 계명이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어미의 젖은 새끼를 양육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만들어 내는 생명의 양식이다. 그 젖을 통해 어미와 새끼는 생명을 공유하여 이어간다. 그 젖에 새끼를 삶아 죽이는 것을 어미가 목격하게 되면 어미는 모든 생산 활동을 멈춘다고 믿었다. 결국 유목민들의 삶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게 된다. 이 계명은 생명의 생산자가 되는 어미의 마음을 헤아려 교감하고, 공감하고, 생명을 공유하여 사회를 유지하고 존속케하라는 뜻이 담겨있다.우리 사회가 편향적이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서로를 적대시 하며, 공정성이 무너지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공감해 보려는 능력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있는 자가 없는 자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니 분배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금수저가 기회를 반칙으로 독점하니 공정성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남이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남이 슬플 때 같이 슬퍼하는 같은 감정을 가지는 ‘공감’은 ‘공유’를 불러오지만 남이 기뻐하는 일을 슬퍼하고 남이 슬퍼하는 일을 기뻐하는 반대 감정을 가지는 ‘반감’은 ‘공격’을 불러온다. 우리 사회가 ‘공유성’ 보다 ‘공격성’이 강한 것은 ‘공감능력’ 보다는 ‘반감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편향적이 되어 가며 사회는 분열되고 서로 공격하게 되고 급기야 사회는 무너지게 된다. 그런 연유로 “새끼 염소를 어미젖에 삶지 말라”고 한 계명은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명연대를 위한 공감능력향상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예수님은 자신의 시대를 비유로 말하길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생명연대의 공감능력을 향상 시켜 아름답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2020-11-11

인간 행복의 길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용인대 객원교수불볕더위가 엊그제 같더니 제법 선선한 가을이다. 완연한 봄을 느끼거나 꽃이 활짝 피는 계절을 즐길 여유도 없이 신록의 계절인가 했더니 어느덧 낙엽이 우수수 지는,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사색의 계절이 되었다.연초 발생한 전대미문의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에도 충분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관계 속에 부딪히고 마주하여 이루고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지구촌은 함께 위기를 돌파해야 하는 공동체라는 화두를 던져주기도 했다.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회성이다. 너나없이 세상의 우리들은 ‘관계 맺음’의 천재였다. 인간은 사소한 일로 다툰 친구와 화해를 하며 별것 아닌 문제로 틀어진 동료를 달래주고 나 아닌 타인의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러한 감정들을 데이터화하고 수치화시킨 지능 프로그램으로 컴퓨터나 로봇에게 부여하기엔 아직 거의 불가능하다.인공지능의 등장으로 현재 직업 가운데 47%가 지상에서 사라진다는 UN미래 보고서의 발표가 있었다. 지적 노동의 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사람은 인공지능의 보조 역할이나 하게 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구글에선 벌써 인간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머지않아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로봇이 자아를 갖고 우리에게 덤벼드는 상황도 가능해지는 건 아닐까?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이 10년 이내에 인류 사회를 급격하게 바꿀 거라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일상을 해결하는 효율적인 기술을 다 차지할지라도, 자족(自足)의 지혜로 채워내는 인간의 행복까지 빼앗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동안 살아온 날은 너무도 무지했다. 하루하루 쓸데없는 욕구불만이 어김없이 번민과 고뇌의 산물이었건만, 이를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 무지몽매하게만 살아왔다.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작은 것에 만족하고 떳떳하게 사는 길이라는 작은 깨우침을 비로소 얻게 된다. 삿된 욕심을 적게 지니면 마음만은 평안해질 수 있다. 세상 사는 거 다 오십보백보다. 누리고 산다고 해도 중생고를 벗어날 수 없듯이, 가질수록 갈증이 더해만 가듯이, 이제는 소욕자족하며 살자는 뼈아픈 깨달음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는다.타인을 아프게 하지 않으면 나 자신도 아플 일 없다. 이제라도 더욱 선하게 손해 본 듯이 살아보자. 문명이 진보하여 세상이 더 편리해진다고 인류가 모두 행복할까? 돌이켜보면, 차도 노트북도 핸드폰조차도 소유하지 않았던 예전이 결코 지금보다 덜 행복하였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2020-10-18

인생 성공과 행복의 비결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펩소던트 컴퍼니라는 기업에 찰스 럭맨이 사장으로 취임했는데 사람들은 그의 성공 신화를 부러워했고 그 성공 비결을 알고 싶어 무수한 질문을 했습니다. “사장님의 뛰어난 머리가 성공 비결입니까?” “아닙니다. 제 학력은 별 볼 일 없는 수준입니다.” “그러면 물려받은 재산 같은 것이 원동력이 되었나요?” “아니요. 저는 무일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실제로 찰스 럭맨은 물려받은 돈도 없고 학력도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남자였습니다.사람들은 그가 사장이 된 것을 궁금해하며 그 비결을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11년 전 했던 단 하나의 결심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을 중요한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한 그의 충고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쉽고 당연한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먼저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그래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 오늘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며 어떤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바로 그 계획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11년 동안 이 결심을 위해 노력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중요한 일부터 먼저 처리한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저것이 더 중요한 것일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연한 것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판단력과 현명함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계몽주의 사상가.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유명한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한 사람이다.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가 가진 것들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남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길 기다리지 말고 나 스스로 행복을 느끼고 행복을 만들어 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는 것입니다.행복의 씨앗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복이란 향수와 같다고도 말합니다. 자신에게 먼저 뿌리지 않고서는 남에게 향기를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멋진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보시기 바랍니다. 멋진 사람은 눈을 즐겁게 하나 따뜻한 사람은 마음을 데워 줍니다. 잘난 사람보다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보시기 바랍니다. 잘난 사람은 피하고 싶지만, 진실한 사람은 곁에 두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어보시기 바랍니다. 대단한 사람은 부담을 주지만 좋은 사람은 행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2020-09-28

월트 디즈니의 인생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농촌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전원풍경을 백지에 그리며 가난하였지만 늘 행복한 나날을 보내었다.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이사한 뒤 신문 배달을 하던 소년은 신문 만화가를 꿈꾸며 남몰래 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그에게 만화는 보석같은 꿈이었고, 자존심이었다.소원대로 소년이 자라 신문사의 만화가가 되었지만 이 젊은이의 야심작과 자존심을 담당국장이 날마다 평가절하하며 퇴짜를 놓았다.“이걸 그림이라고 그리나? 차라리 그만두는 게 어떨까?”늘 이런 소리를 듣던 그는 급기야 어느 날 평생 직장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던 곳에서 명예퇴직을 당하였고 돈도 벌지 못하여 생계를 위해 트럭 운전수로 제1차 세계대전을 겪기도 했다. 실의에 빠진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다가 다시 농촌으로 내려갔다. 농촌에서 한 교회의 지하창고를 빌려 쓰며 잡일을 하기 시작했다.지하창고의 어둠은 바로 자신의 암담한 모습이었다.그러나 그 지하창고가 보물창고로 변하는 일이 생겼다.상처를 받고 절망했던 그는 창고를 뛰어 다니는 징그러운 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예쁘고 친밀감 있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쥐는 더이상 징그러운 존재가 아니었으며 흉물스러운 쥐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히니 오히려 다정한 말 벗이 되었다.이렇게 해서 나온 그림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키마우스’ 이다.그 젊은이의 이름은 월트 디즈니. 오늘날 ‘디즈니랜드’의 주인이다. 젊은이는 미키마우스를 만든 다음, 메리 포핀스, 신데렐라, 피노키오, 피터팬 등과 같은 만화 영화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오늘날 디즈니라는 이름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와 1920년대 처음 등장한 ‘월트 디즈니’ 는 그 상업적 성공이 말해주듯 가장 많은 수의 캐릭터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 중에서도 미키마우스의 존재감은 월트 디즈니의 거대한 성공과 동의어로도 여겨진다. 디즈니에게는 쥐가 득실거리고 참혹했던 지하창고는 오히려 아이디어 창고가 되어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게 해주었다. 암울하고 어려운 시기가 오히려 창조와 기회의 계기가 된것이다.폐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한 달여 만, 65세의 일기로 숨을 거둔 그는 사망하기전 “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기억하기 위해 장례식을 치르지 말아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공동 묘지에 안장 되었다.월트 디즈니의 인생에서처럼 현재의 어려운 처지나 미운 동료, 싫은 친구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킨다면 내일은 밤하늘의 찬란한 별처럼 밝게 빛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보물창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2020-09-02

위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배에 동력이 발명되기 전에 바다 위에 모든 배는 바람에 의해 항해해야 했기에 초창기 돛단배는 돛의 방향이 배와 수직이었습니다. 따라서 순풍이 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역풍을 맞으면 앞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원래 돛의 방향을 바람과 수평 방향으로 바꾸고 제내커(Gennaker)라는 보조 돛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돛의 크기가 커지더라도 조절이 쉬워졌고 더 많은 바람을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이전보다 빠르게 항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더 많은 지역으로 이동이 필요해지고 동시에 왕복 이동을 위해 역풍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었습니다.이때 등장한 것이 지브세일(Jib Sail)입니다. 지브세일은 역풍이 불 때 제내커대신 사용되는 작고 팽팽한 삼각형 모양의 돛입니다. 돛단배가 지브세일을 이용하여 역풍에도 순항하는 원리는 비행기 날개에서 양력이 발생하여 비행기가 뜨게 되는 원리와 동일합니다. 비행기 날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돛의 주위에 공기가 흐를 때 돛을 경계로 하여 형성되는 양력을 받아 순항할 수 있습니다.바람이 유일한 동력원이라 변화무쌍한 역풍 앞에서는 더 이상 전진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여기는 돛단배이지만, 이러한 역풍 활용 덕분에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대식 요트로까지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역풍을 활용하려 하지 않고 역풍을 피하고자 역풍이 불지 않을 때나 적게 부는 지역에서만 사용되어졌다면 돛단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자리에 불쑥 다가오는 크고 작은 위기를 만날 때 불확실성을 회피하거나 관리하는 데만 주력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1980년대 크라이슬러를 파산에서 구해내고 위기관리와 변화의 심벌로 떠올랐던 리 아이어코카는 “우리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가장된 위대한 기회를 항상 접하며 산다”라고 말했습니다.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불확실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선택의 기로에서 명확하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의 결단력’입니다. 위기야말로 자신의 리더십을 테스트해 볼 좋은 기회입니다. 위기를 직면해 뚫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 리더들의 숙명입니다. 위기 가운데 있는 돛단배이지만 당당히 올라 자신 있게 ‘호이스트(돛을 바꿀 때 쓰는 신호)!’를 외쳐봅시다.2020년은 너무나 인간 한계를 느끼게 하는 일들로 인해 자포자기하고픈 일들이 있을 수 있지만 역풍도 감사하며 전진하고 도전합시다.

2020-08-26

혹시 당신의 마음 속에 행복이 있지 않습니까?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나한테 밥 한 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워서 답례하고 싶어 불러내지만, 날 위해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제대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지만, 일상에 지치고 힘든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어머니 걱정은 제대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죄송합니다.이 세상 떠나신 후 이제야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어떤 분은 말합니다.신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두 가지는 ‘눈물’과 ‘웃음’이라고 합니다.눈물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웃음에는 건강이 담겨있다고 합니다.당신의 마음속에는 특별한 스위치가 있는데 오직 자신이 직접 켜고 끌 수 있는 행복 스위치입니다.지금 내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면 나도 모르게 그 스위치를 꺼 놓고 있는 건 아닐까요?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행복은 누리고 불행은 버리는 것입니다.소망은 쫓는 것이고 원망은 잊는 것입니다.기쁨은 찾는 것이고 슬픔은 견디는 것입니다. 건강은 지키는 것이고 병마는 벗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끓이는 것이고 미움은 삭이는 것입니다. 가족은 살피는 것이고 이웃은 어울리는 것입니다. 자유는 즐기는 것이고 그런 속박은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웃음은 나를 위한 것이고 울음은 남을 위한 것입니다. 기쁨은 바로 행복입니다.행복은 누가 만들어줄까요?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의 마음속 행복 스위치를 다시 켜보세요. 밝고 환한 행복이 켜집니다.잡은 것이 많으면 손이 아픕니다. 들고 있는 것이 많으면 팔이 아픕니다. 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어깨가 아픕니다. 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눈이 아픕니다. 생각하는 것이 많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품고 있는 것이 많으면 가슴이 아픕니다.이제라도 모두 다 내려놓으세요.전부 다 놓아버리세요. 그리고 편안하게 사세요.우리가 아픈 것이 많은 것은 모두 다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이 들 땐 잠시 내려놓고 쉬세요. 그럴 땐 자신에게 칭찬의 한마디를 해주세요. “여기까지 참 잘 왔구나! 고생했네! 힘들었지!” “이만하면 열심히 안 살았나? 그래 참 잘하고 있다.” 소소한 한마디가 그 어떤 힘보다 강하게 되어있습니다.

2020-08-12

최후의 만찬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그는 이 그림을 그릴 때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을 찾기 위하여 어느 날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성전 한구석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한 청년이 있어서 다빈치가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예수 그리스도와 흡사한 점이 많았습니다. 평화로운 모습과 자비로운 인상, 어디엔가 위엄이 있고 눈에는 빛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빈치는 이 사람을 데리고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로 그렸습니다. 이렇게 이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로 삼고 그 주위에 십이 사도들의 모습도 그리고 최후로 가룟 유다의 모델을 찾게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성서에서 예수를 배반한 사도로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일하게 유대땅 출신입니다. 그에 대한 이미지는 18개 복음서에 기반을 둡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유다가 자주 나오지 않지만, 얼마 되지 않는 구절에서조차 유다는 헌금함에서 돈을 훔치는 도둑이며 사탄의 영향을 받는 악마입니다.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가룟 유다의 모델을 찾던 중 어느 날 술집에서 술에 만취한 청년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청년을 보니 가룟 유다의 모델이 되기에 흡사한 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눈에는 살기가 흐르고 얼굴 표정에는 욕심이 넘치고 있었으며 행동을 보니 꼭 돈에 미친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빈치는 이 사람을 가룟 유다의 모델로 그려야 되겠다고 마음먹고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았더니 놀랍게도 이 사람은 몇 년 전 성전에서 만난 그 기도하는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빈치는 이 사람을 가룟 유다의 모델로 그림을 그렸습니다.그래서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델과 가룟 유다의 모델은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숨겨진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에게 누구나 이 두 가지의 가능성을 가지고 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가능성 중에 삶을 살면서 결정적인 순간 어떤 역할을 하는 가에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른 아침 거울 앞에선 당신의 모습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당신의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두 얼굴로 살지마시고 항상 행복한 미소짓는 당신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미소가 이웃의 행복까지 지켜 줄 것입니다.

2020-07-22

대통령 만수무강(大統領 萬壽無疆)

탄탄 스님 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이 시대의 정치체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라는 상징적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대통령직이 안정이 되어야 한다.물론 투명하고 무엇보다도 정의롭고 공평해야 그러한 신뢰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우리네 삶의 안정에 연관되는 대통령의 의사 결정은 우리 생활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뒤틀어 놓을 수 있는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고용이며 노동조건과 소득, 재산, 부동산, 건강, 교육, 사회보장, 세금과 공공요금, 삶의 인프라 등 그 어떤 막강한 힘 아래서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고 바뀔 수 있는가.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 대통령이 장악한 정부와 관료 체제이고, 그러한 체제를 움직이는 최고의 사령탑에 앉아 있는 존재가 대통령이며 대통령직이 흔들리면 온 나라의 불안감은 증폭된다는 사실이다.정치는 일상적 잡사에까지 힘이 미치면서 동시에 일상의 잡동사니를 초월하는 정연하고 투명한 공간을 구성한다.잡다한 일상사에서 삶의 위엄을 그 나름으로 직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공간이다. 그러나 근자에 정치 공간에서의 위엄의 소멸은 세계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트럼프 대통령의 여러 수준 낮은 발언이나 인종차별, 이민자의 박해 등 공공의 공간에서 결코 드러내어 말하지 않아야 할 말들이지만 지지기반 확대를 위한 정치쇼에 우매한 유권들은 열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시기에 트럼프의 권력누수는 미국 사회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작금에 시진핑 주석의 마음도 상당히 급해졌다. 아예 ‘지쟁조석(只爭朝夕)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지쟁조석은 마오쩌둥 주석의 말인데, 1963년 1월에 지은 시 ‘만강홍·궈모뤄 동지와(滿江紅·和郭沫若同志)’에서다. 당시에는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인도 지지와 중국 반대를 외칠 때였다. 당시 대약진운동 열기의 그늘 속에서 중국인민 약 2천만 명 이상이 굶어죽던 시기에 마오는 남의 나라에서 1만년 단위로 역사가 전개될지라도 중국에서는 한 시간, 한나절 단위로 급박하게 역사가 전개되어야 한다며 조급해 했다. 지난 가을 현대판 로마제국인 미국 추월을 선언한 시 주석의 조급함이 문화대혁명 직전 마오를 닮고 있다. 중국의 원로 역사학자 장카이위안은 “조급 의식이 무한하게 팽창하거나 남용되면 민족을 풍광(瘋狂)케 하여 민족의 재난 또는 세계의 재난이 된다”고 경고한 바 있음에도 말이다.우리 대통령도 조급해 하지 말고 차분히 민생을 챙기고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길 바랄 뿐이다. 홀로 독주만 하려 말고 야당과 동반하여 레임덕 없이 남은 기간을 잘 마무리하고 무탈하길 바라며 골깊은 산사에서 통령각하 만수무강을 애타게 불전에 기원한다.

2020-07-15

달리는 인생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농부를 돕던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습니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을 메워갔습니다. 그런데 울부짖던 당나귀가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서 바닥에 떨어뜨리며 발밑으로 흙이 쌓이게 하고 흙더미를 밟고 점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서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나귀처럼 곤경의 우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때로는 환경이 흙더미로 나를 덮어 오지만 오히려 지혜로움과 인내로 용기를 가지면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요셉은 고난의 사람이었고 욥이나 다윗도 모두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고난 속에서 인생을 아름답게 꽃피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의 성패를 순경 속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으나 진정한 인생의 성패는 순경 속에 있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이겨낸 결과에 있었습니다.그런데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용기였습니다. 용기야말로 고난의 벽을 뛰어넘게 하는 삶의 동력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용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용기는 고난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극복의 대상으로 보게 합니다. 그리하여 고난과 당당히 맞서 싸우게 합니다. 삶의 용기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에서 우러나옵니다. 과연 믿음은 삶의 용기를 주고 용기는 삶에 변화를 줍니다. 그리하여 고난의 바다를 기쁘고 당당하게 항해하도록 삶에 힘을 줍니다.뉴질랜드에는 ‘키위’라는 새가 있습니다. 부리가 긴 이 새는 앞을 보지 못하고 날지도 못합니다. 키위가 사는 곳이 화산지대여서 뱀이나 파충류 따위의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해 굳이 날아다닐 필요가 없어 날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날개와 눈의 기능이 퇴화하여버린 것입니다.육체의 근육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고, 재능도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합니다. 성령의 은사도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고여 있는 물은 썩듯이 사람도 편안하면 타락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달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달리지 않는 자전거는 넘어지듯이 달려가지 않는 인생은 넘어지고 맙니다.

2020-07-08

니르바나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절집에서 아침 저녁 널리 독송되는 경이 ‘반야심경’이다.본래의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다.이 뜻은 ‘지혜의 빛에 의해서 열반의 완성된 경지에 이르는 마음의 경전’이란 뜻이다.반야심경은 수백 년에 걸쳐서 편찬된 반야경전의 중심 사상을 270자로 함축시켜 서술한 경으로 불교의 모든 경전 중 가장 짧은 것에 속하며 불교의 모든 의식(儀式)에서 반드시 독송되고 있다.반야심경의 중심 사상은 공(空)이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뜻에서 시작하여 “물질적인 존재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것이므로 현상으로는 있어도 실체·주체·자성(自性)으로는 파악할 길이 없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공은 개개인의 참된 마음이다. 걸림 없는 마음, 공포가 없는 마음, 교만하지 않는 마음, 영원히 맑고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마음이며 부정을 겪어 그것을 넘어선 대긍정의 마음이다. 여기서 평화와 통일과 자유와 해탈이 모두 유래됨을 이 경전을 통하여 자각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삼라만상은 독립되어 있는 개별적 존재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하여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러한 근본 원리를 깨쳐 하늘에 구름이 끼어 해가 보이지 않아도 그 속에 해가 들어 있음을 알아차려 세간의 어려움 속에서도 청정심을 잃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에서는 끊임없이 파도가 일었다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파도는 이렇게 생멸(生滅)을 거듭하면서 존재하고 있다.이것이 생자필멸(生者必滅)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세계다. 현상적으로 보면 바닷물과 파도는 다른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바닷물과 파도가 다르지 않듯 하늘과 구름, 인간과 자연도 서로 다르지 않은 불이(不二)의 세계이다.나의 육신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날마다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파도와 구름들이 물(水)과 하늘로부터 분리될 수 없듯이, 나의 모습 또한 사실은 늘 다른 모습이면서도 결국 다르지 않은 불일불이(不一不二)의 나, 그것이 오늘 ‘나’의 모습이다.나 또한 물처럼 흘러 구름처럼 흘러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물체처럼 시공간에 매여 있는 고정된 내가 아니라 주변의 인(因)과 연(緣)에 의해 늘 새롭게 ‘되어지는 존재(inter being)’. 그래서 오늘,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하고 존재론적 자문을 하게 된다.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영원 속의 한순간처럼 우주 속의 한 원자로 살아가고 있다.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그 영원한 니르바나, 저 언덕에서 손짓하고 있는 피안의 중도(中道)를 다만 지향하고 있을 뿐이다.

2020-07-01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며

정석수 신부대구가톨릭 치매센터 원장시간은 찰나의 봄을 지나 푸른 여름으로 향하고 있다. 계절은 이렇게 변화를 주는데, 달갑지 않게 다가온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형태를 많이 바꾸어놓았다. 텅 빈 베드로광장, 한산한 거리, 비어 있는 학교 운동장, 그 빈 공간을 마주보며 마음이 아프다. 빈 무덤! 그곳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얼마나 공허했을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도 말할 수 없는 아픔이지만 그분의 시신도 없어진 빈 무덤!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마주하며 가슴이 얼마나 헛헛했을까.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병고와 가난이다”라고 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인데, 왜 그는 이런 말을 하였을까. 먹고 살기 위하여 더 가지기 위하여 바빠 본질적인 것을 놓치는 무한질주의 현실에서 가난과 고통은 삶의 브레이크와 같다고 할 것이다. 즉 그것은 다시금 본질,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한다.도공들은 정성껏 준비한 그릇과 항아리들을 불가마에 넣는다. 그것들이 높은 온도의 불길에 예상도 못한 흔적을 남기기도 하여 뛰어난 작품이 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찌부러지기도 한다. 고난과 실패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고난에 맞을 용기를 청하자.예수님은 고별사에서 고난에 맞을 용기를 갖게 하셨을 뿐 아니라 평화를 얻게도 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떠남, 그 빈자리에 오실 성령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제자공동체에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예수님은 떠나시면서 보내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낙원을 되찾게 되고 하늘나라에 오를 수 있게 된다. 가톨릭교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준비시키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사람들을 도와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신다. 또한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시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도록 정신을 열어 주신다.”헬렌 켈러는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다만 우리는 닫힌 문을 너무 오래 바라보느라 열린 문을 보지 못할 뿐이다.”라고 했다. 닫힌 현실의 문만을 바라보고 있지 말고 주님께서 열어주신 부활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을 청하자.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새로운 만남을 준비시키시고 은총으로 사람들을 도와주신다.

2020-06-24

꼭 기억해야 할 아픔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섬나라 일본이 앞선 근대화로 저들이 가진 힘으로 야욕을 불태우며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 도발과 동시에 대한제국 침략의 발판을 굳히고 대한제국 황성을 공격해 당시 황궁이었던 경운궁을 점령했습니다. 이어 1904년 2월 23일에는 대한제국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제국 영토를 일본의 군사기지로 제공하는 한일의정서를 강압적으로 체결하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군사 요충지를 강제 점령했습니다.그 이후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기쁨을 찾기까지 약 36년간의 치욕적인 시대를 우리의 역사 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날 당시 한일합병이 무효라고 일본 역사학자들과 우리 학자들이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해방에 이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1950년 6월 25일 새벽을 틈타 북쪽 김일성의 야욕으로 남침함으로 민족의 한을 남긴 전쟁이 이 땅에 발발했습니다.6·25 전쟁은 남북한 모두에게 엄청난 희생과 재산을 함께 잃어버린 비운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국난에 자유수호를 위해 전투 병력을 파견한 나라 가운데 3천 명 이상 나라가 프랑스(3천421명), 뉴질랜드(3천795명), 네덜란드(5천322명), 필리핀(7천420명), 오스트레일리아(8천407명), 터키(1만4천936명), 영국(5만6천명), 미국(1백78만9천명) 등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태국,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노르웨이 등 많은 나라 군인들이 전사했거나 부상당하였습니다.6·25 전쟁으로 희생된 전사 및 사망자가 17만8천569명. 부상 5만5천22명. 실종 2만8천611명. 포로 1만4천158명, 우리나라 통계는 전사자 13만7천899명, 부상자 45만742명으로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얼마나 많은 희생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까?그 아픔과 상처의 자리에 하나님의 회복과 치유의 역사로 오늘의 조국 대한민국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 아픔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6월에 이제 조국 대한민국의 근대사에 얼룩진 역사 현장을 기억하며 다시 이런 아픔과 슬픔을 후세대에 물러주지 않기 위해 새로운 도전과 결단으로 새 역사를 다시 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020-06-17

인문학적 마인드

탄탄 스님포항 운제산자장암 감원중앙승가대 강사얼마전 필자의 모교인 동국대학교의 이사장을 역임하신 큰스님을 뵈었다.모교 사랑이 남다르신 분이다.더구나 종립 학교인 모교의 이사장을 역임하시었으니 오죽하실까만은 만나자마자 우리 동국대학이 배출한 만해 스님과 무애 양주동, 미당 서정주를 거론 하시더니 우리 대학은 인문학의 보고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인문학 중심 대학임을 갈파하시는 것이었다.요즘 세상이 하수상 하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게 된다.‘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가, 온 곳도 모르니 갈 곳인들 알을 손가’살아가면 느끼는 바이지만, 세상이 살기 편리해지고 문명이 천지개벽을 하였다고 하지만, 인간의 생존은 더욱 각박해지고 험난 일변도로 변해 가는 듯하다.이러한 때에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보며 삶의 자세를 바르게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얼마전 대학에 적을 둔 젊은 친구들에게 인문학에 대하여 물었다.여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인문학이 단순히 유적을 탐방하거나 역사적 인물의 삶 속에 내재된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것만은 아니다.어떤 이는 공자, 맹자의 논어 대학 등 고전읽기가 인문학이라고 목청을 높일 수도 있겠지만,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인문학이 경험적인 세계에서의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학문이었다면 르네상스 이후의 인문학은 분석적, 비판적 방법으로 인간의 여러 조건들을 연구하는 좀 더 사변적인 학문이다.그러니 ‘인문학이 돈이 되는 학문은 아니다’라는 말은 결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자본의 흐름과 그 근원만은 알 수가 있다.현대적 의미에서 철학, 미학, 문학, 역사 등 대학의 교양 과목이 인문학을 의미하고 고대어, 현대어 등의 언어와 언어학, 문학, 역사, 철학, 종교가 포함되며 흔히 예능으로 분류하는 음악, 연극, 시각예술, 공연예술, 등도 포함되기도 하고 사회과학 분야인 인류학, 지역학, 커뮤니케이션학, 문화연구, 법학 등도 광의적 의미에서의 인문학이다.인문학 내용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디지털 기기와 방법을 사용하거나 고전 문헌을 데이터화한다든가 하는 방법적 과정을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어찌되었든 인문학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제반 문제를 성찰하는 학문이며 인간이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고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이며 삶과 죽음, 대립과 갈등이 있고 사랑과 증오가 인간세계에 공존한다는 사실이다.또한 이성과 야만의 틈에서 비합리성과 절망, 고독의 문제를 직시하고 분석하여 성찰하는 것이 인문학이다.그러므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간을 양성하는 길은 인간에 대한 모든 관심 혹은 배려심을 지니는 것이며 넘쳐 나는 자본의 물결과 전염병의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원할 인문학적 마인드를 지닌 대학인 양성이 가장 시급한 시점이라 하겠다.

2020-06-10

인간적인 붓다

탄탄 스님 포항 운제산 자장암 감원 중앙승가대 강사유럽의 불교학자들은 역사적 붓다를 인간적 존재로 보는 경향이 농후했다.붓다가 되기 전 고타마는 그의 재세 시대에서 무한하면서 초월적인 존재로 체현된다.신화와 우상화가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참답고 실다운 인간미 넘치는 분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완벽한 분이었고 절대적 경지에 이른 성인을 인간적 관점의 붓다로 조명하려는 까닭은 신과 인간이 종속적 관계인 주종관계임을 철저하게 부정하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신의 노예인 인간이 해탈하여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상세하게 일러주신다.세상의 모든 지식이 눈깜짝할 찰나의 시간이면, 검색이 가능하며 인공지능을 삽입한 로봇에게 인간능력의 수백배를 부여하고 그 역할을 주어 기능하게 하는 것을 보면, 눈부신 과학문명 사회에서 이제는 인간이 거의 신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였다.그러나 이렇게 최첨단 문명 속에서 살던 인류가 어느날 창궐한 전염병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속수무책이다.역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돌파하고자 죽음 앞에서는 늘 두렵고, 내세를 기약할 수밖에….깨달음을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는 삶을 곧 완성된 인간인 붓다라고 한다.미완성의 인간이 중생이라면 자기 절제와 수행을 바탕으로 완성된 붓다를 이루는 것이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초기불교의 관점에서 초월적이고 절대적 존재로 붓다를 부각했고 이후 대승불교권에서는 붓다를 더욱 신격화 하는 경향이 농후했다.붓다재세 시 그 이후에도 무한하고 초월적인 것을 선례가 없는 방법으로 체현했고 붓다 설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언제나 ‘진실’이었다.무조건적인 신격화 보다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붓다의 삶에서 인류가 신과 인간의 종속적인 관계에서 해방되고 인류사에서 가장 휴머니즘에 입각한 종교를 창시한 것이 불교이다.중생이 살고 있는 이땅은 오염된 ‘예토’이다.중생의 업보로 정결치 못한 예토에서 정결한 정토를 지향하는 불자는 늘 나무 아미타불을 염송하기도 하는데, 이는 ‘정토’라 하여 아미타불의 주불인 서방정토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서방정토를 포함해 타방(他方)에 존재하는 모든 불국토를 포괄하고 있기에 죽어서 가는 극락이 결코 아니다.현세의 예토를 정토로 바꾸고 금생의 지극한 환희와 기쁨의 세계가 극락이며 불교도 믿음을 출발점으로 하지만 이교도에 비하면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할 뿐.절대적인 신과 주종관계이고 죽어야만 가는 천국의 세계가 아닌, 현세의 극락을 지향하여 금생의 예토를 현세에 정토화 하는 것이 불자의 당면과제이다.

2020-05-27

D-day!·V-day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기갑부대를 지휘해 여러 차례 큰 승리를 거둬 ‘사막의 여우’란 별명을 얻은 에르빈 롬멜(1891∼1944) 장군이 있었습니다.롬멜은 2차 세계대전 역사상 매우 특이한 존재였습니다. 독일군 장교였지만 연합국 장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나토 총사령관을 지낸 웨슬리 클라크 대장은 훗날 “외국 장군 중에서 롬멜 원수만큼 존경심을 불러일으킨 장군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사관학교를 거쳐 1912년 소위로 임관한 롬멜은 1차대전 전공으로 프로이센 군 최고훈장인 ‘푸르 르 메리트(Pour le Merite)’ 훈장을 받았습니다. 이후 대위로 진급한 뒤 34년 고슬라 주둔 당시 에른스트 룀 쿠데타 사건을 계기로 히틀러를 만나 충성을 맹세한 뒤 승승장구 해 40년 중장으로, 42년 6월 독일군 최연소 원수 계급장을 달았습니다.롬멜 장군은 44년 6월 1일 독일 군대에게 프랑스 서부해안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에게 프랑스 상륙을 허용하게 된다면 독일군이 한층 불리해지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갑자기 기상이 좋지 않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프랑스 서부해안을 덮고 있었습니다. 기상 상황을 본 롬멜 장군은 안개가 낀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도 되겠다고 판단해 6일 날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날아갔습니다.그러나 롬멜 장군이 안심하고 자리를 비운 다음 날 연합군의 대대적인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는 그날을 가리켜서 ‘디데이(D-day)’라고 부릅니다. 연합군이 독일을 패배시키고 세계대전을 결정적인 승리의 자리로 바꿨던 날, 결정적인 승리가 확보된 날을 ‘디데이’라고 합니다. 물론 디데이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한 뒤에도 독일은 최후의 저항을 계속했지만, 마침내 독일이 패배하고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합니다. 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날은 ‘디데이’라고 하지 않고 ‘브이데이(V-day)’라고 합니다. 바로 승리의 날인 것입니다.코로나19로 인해 얼마나 불편함과 수고로움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시작은 너무나 참혹한 현실 앞에 모든 국민들이 다 환자 아닌 환자 같은 심정으로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와 머물러야할 작은 공간에서 각자 맡은 희생의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그런데 그 결과 우리에게도 ‘디데이(D-day)’가 왔고 이제 ‘브이데이(V-day)’도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함께 힘을 보태어 그동안 희생의 값으로 경제 회생의 ‘브이데이(V-day)’를 이루어갑시다.

2020-04-22

석가모니 부처님

철산 스님 포항 보경사 주지석가모니의 호칭은 붓다, 부처, 고타마 싯다르타, 여래, 천인사 등 여러 가지이다. 부처라는 말은 인도에서 온 말로 ‘붓다’인데 이는 ‘깨달은 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의 불(佛)은 부처, 교(敎)는 가르침으로, 불교를 단어의 뜻 그대로 해석하면 ‘깨달은 이의 가르침’이다.석가모니가 출가를 했던 이유, 6년 간의 고행을 단행했던 이유에 비추어 봤을 때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세상 일체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고 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의미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모든 고통의 원인은 ‘무명’(無明)이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바르고 청정한 지혜를 증득하여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불교를 흔히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이해하고, 이 세속을 초월한다는 의미를 속세를 떠나 산 속에 묻혀 선정을 닦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장면을 묘사한 경전 구절에 비추어 보면, 세속을 초월한다는 의미는 결코 세상과 관계없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른 지혜와 청정한 눈으로 구체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진리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디디고 선 바로 이 현실 자체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석가모니의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緣起)로 대표된다. 연기는 석가모니가 세계와 존재의 구성 원리에 대해 발견한 것이다. 연기란 ‘말미암아 일어난다’는 뜻으로서, 세계나 존재는 조건들의 모임이고, 이 조건이 변해가기 때문에 존재도 끝없이 변함을 설명하는 원리이다. 연기는 존재의 인식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존재의 고통과 혼란의 근본원인을 무명이라고 말하고, 무명이 소멸하면 모든 고통이 해결되어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즉,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무명에서 벗어나는 것이 열반에 이를 수 있는 길이며, 열반은 완성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선포한 후에도 평생 동안 팔정도(八正道) 수행을 하고, 그 수행의 방편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법을 전한 것은 궁극적인 열반을 향한 일체의 자기 수행, 자기 공부였다.세계적 대유행이 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부당함과 고난, 그리고 두려움을 겪고 있지만 냉정과 넓은 마음을 가지고 역대 불문의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한 대응을 잊지 말 것을 모든 분들께 당부드린다. 어떠한 곤란이 있더라도 오직 자비와 지혜로 대응하고 모든 사람들이 환경보호와 생명보호를 중시해 이 위기를 평안함으로 전환 시킬수 있기를 바란다.

2020-04-15

믿음의 눈으로

김종기죽전성당 주임신부몇 년전 이맘 때 신자 몇 분과 동해 방면을 다녀온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가는 길에 예쁘게 피어난 봄꽃들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날은 공휴일이라 나들이 가는 차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던 중에 한 분이 “여러분, 보니까 어때요?” 하고 일행들에게 물었습니다. 동시에 두 분이 대답했습니다. 한 분은 “꽃들이 참 곱네요!” 다른 한 분은 “차가 굉장히 많네요!”우리나라 속담에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평소에 자기가 마음을 두고 있는 것과 관련된 것만 본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동일한 사물이지만 평소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짐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똑같은 풍광을 보고도 어떤 이는 ‘아름다운 꽃’을 생각하고, 어떤 이는 ‘복잡한 도로교통’을 생각하기에 말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마르코복음에서 바르티메오는 비록 소경이지만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앞을 못 보는 처지에서 어떻게든 ‘볼 수만 있다면!’하는 바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었을 겁니다. 그런데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 힘없는 사람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신다는 “예수”라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무조건 자비를 빌었습니다. 그분만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눈을 뜨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예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요즘 많은 사람들이 돈이 있어야 인간답게 세상을 산다고 믿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그 돈이 없어서 남의 돈을 훔치고, 뇌물을 받고 남의 목숨을 빼앗습니다. 돈이 인간다운 삶의 척도라 생각하는 사람의 눈에는 돈만 보입니다. 명예가 인간다운 삶의 척도라 생각하는 사람은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다 합니다. 하지만 인간다운 삶의 기준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그 뜻대로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기준임을 우리는 잘 압니다.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진정 무엇을 바라고 살아갑니까? 마르코복음에서 바르티메오는 자신의 믿음으로 소경이었지만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육신의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진정 하느님께서만이 우리를 인간답게 살도록 해 주시는 분이라 믿는다면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모두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올바로 보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함으로써 그분을 보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2020-04-08

마음의 면역력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코로나19 물리적 방역만큼이나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심리 방역’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과거 IMF 외환위기처럼 경제적인 재난과 달리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신체적인 재난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합니다.이럴때 일수록 ‘마음의 면역력’을 강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의 면역력’ 저하는 ‘선명한 판단력’과 연결되어 분별력 또한 저하됨을 우리는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마찬가지로 ‘마음의 병’은 ‘육신의 병’으로 전이되어 질병과 바이러스에 취약해지고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은 몸도 점점 연약해 지는 것입니다.“무릇 네 마음을 지키라”, 그렇습니다. 마음지킴이를 활용해야 합니다. 약해진 마음으로는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항하지 못해 마음의 질고를 겪게 됩니다. 단단한 마음을 위한 ‘마음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마음 훈련’. 마음에 사랑을 채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마음의 면역력이 높아집니다. 사랑의 이타적 속성으로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상받을, 돌려받을 사랑이 아닌 그저 또 주는 사랑입니다. ‘Give and Take’ 가 아니라, ‘Give and Give’의 사랑으로 마음의 면역력을 키울수 있습니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감”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받고 또 사랑을 주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 속에서 자신을 닮은 인간을 만드셨기에, 인간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 속에 살다가 사랑으로 돌아가도록 지음받았습니다.또한, 마음의 면역력은 자기감정을 읽고 ‘드러내어 표현하기’ 입니다. 감춤은 음지입니다. 양지로 나와야 면역력이 키워지는 것입니다.자기 내면에 요동치는 감정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10초’, 쉼 호흡 후 그 감정을 드러내어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는 10초 훈련을 하려고 합니다. 어느새 분노조절이 어려워짐을 느끼기 시작했기에, 분노조절장치 작동시간 10초를 다시 켜려고 합니다. 그런 후, 나의 감정을 누군가와 건강하게 나누고 싶습니다.마지막으로, 당신안에 감추어진 갈망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합니다. 진정한 갈망을 내재화해 보십시오. 갈망을 실현하기 위해 끄집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리하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가는 것입니다.오늘의 시대창문입니다.“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2020-04-01

역경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정석수 신부대구가톨릭 치매센터 원장“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요한 묵시록의 말씀이 생각난다. “보라, 내가 곧 간다. 나의 상도 가져가서 각 사람에게 자기 행실대로 갚아 주겠다.”일상의 삶에서 혼자 자급자족하기란 쉽지 않다.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살아가게 된다.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받은 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오늘 대구가톨릭치매센터에서 직원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다. 매일 우유 한 통씩과 비타민이 제공된다. 그리고 대노협에서 어르신을 위한 비타민C를 선물 받아 나누어 드리게 되었다. 따뜻한 사랑의 선물에 감동의 물결이 출렁인다. 이렇게 된 것은 코로나19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직원들의 건강이 어르신들의 건강과 직결되기에 서로가 서로를 위한 배려요 돌봄이다.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보면 코로나19 방역을 위하여 한 걸음에 달려와 준 많은 의료진들 덕택에 대구경북은 한 줄기 빛을 찾아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의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이 감염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지인으로부터 필요할 때 사용하라며 성금을 받았다. 어디에 사용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후배신부님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전달할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를 통해서 마스크를 구입하여 전달해 주었다. 약국을 통해서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지만 외국인노동자들에게는 일하는 시간이라 그것도 쉽지 않은가보다.코로나19로 인하여 삶의 조건이 말이 아니다. 일상의 삶이 정지된 듯 시내는 고요하다. 이러한 모습에 외국인의 시선은 신선한가보다. 마트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도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하루 빨리 이 상황이 진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위기 상황을 극복 하라고 십시일반의 사랑의 후원금도 많이 모이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훈훈해져 온다.의료진의 희생이 빛나는 때이다. 이들 모두의 수고로움에 하느님께서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갚아 주시기를 기도한다.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역경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역경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역경은 영혼들을 십자가의 발아래로 인도하고, 십자가는 그 역경을 하늘의 입구로 지고 가서 그분을 만나게 해 줍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시고 역경도 영복의 길로 이끄신 것입니다.”

2020-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