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봉산문화회관 기획 기억공작소
올해 첫 김용익展 ‘후천개벽: 아나와 칼’
4월 21일까지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서
피 묻은 벽돌 등 이야기 품은 작품 ‘독특’
벽면의 영상·리플릿 등 작품 이해 도와

김용익作

대구 봉산문화회관의 대표적 기획시리즈 전인 ‘기억공작소’의 올해 첫 번째 작가로 미니멀리즘 작가 김용익(77)이 초대돼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오는 4월 21일까지 4전시실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후천개벽: 아나와 칼(Ana & Carl)’이다.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인 칼 안드레(Carl Andre·1935~2024)와 그의 세 번째 부인이자 페미니즘 미술가였던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1948∼1985)의 이야기를 담은 설치 작품이 소개된다.

작가는 남성적인 것(혹은 가치)이 여성적인 것(혹은 가치)을 억압하는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시대에서 양적인 것(또는 가치)을 조정하고 음적인 것(또는 가치)을 이끌어내는 조양율음(調陽律陰) 시대로의 변화가 필요하며, 성장과 발전보다는 돌봄과 호혜를 더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함을 메시지로 말하고자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중앙 바닥에 위치한 벽돌 설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관람객들은 총 270개의 벽돌을 2단으로 평평하게 쌓고 그 위에 피(血)를 아주 조금 떨어뜨린 이 작품에서 어떤 의문의 사건이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 피의 모양은 벽돌 설치물의 한쪽 끝에서 시작해 가운데로 점점 진입하는 모양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것은 피로 상징되는 아나 멘디에타가 점점 중심인 칼 안드레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모양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전시실의 한쪽 벽면에는 작업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는 작가 노트 텍스트를 관람객이 읽어나갈 수 있게 설치돼 있다.

맞은편 벽면에는 작가와 큐레이터가 함께 주고받은 이메일 출력물들과 작품의 구상을 위해 작가가 그린 드로잉들, 인터뷰 영상을 설치해 작품과 전시의 이해를 돕는다.

이번 전시는 ‘시각에 호소하지 않는’ 미술을 보여 주는 전시이기에 시각을 사로잡는 작품을 기대하고 방문하는 관람객은 조금 허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작품을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뜻과 수수께끼 같은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과 전시를 완성하기까지의 진행 과정에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기억공작소-김용익전 전시장 모습.  /봉산문화회관 제공
기억공작소-김용익전 전시장 모습. /봉산문화회관 제공

작가에 의해 작품이 완성되는 보통의 전시와는 다르게 이번 전시 작품은 텍스트와 드로잉으로 계획된 작품의 개념을 전달받은 큐레이터의 실현으로 완성됐으며, 작가와 큐레이터는 음성언어나 대면 소통이 아닌 이메일 텍스트와 그림 등의 시각언어로만 소통했다. 작품이 품은 개념뿐만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져 관람객에게 공개되기까지 작가와 큐레이터가 함께 한 개념적 시도의 과정과 결과를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제시한다.

김용익은 그간 현대미술의 어떠한 사조나 운동에 속해있지 않은 독자적인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는 1974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재학시절 발표한 ‘평면 오브제’ 연작으로 국내외 유수 전시에 소개되어 미술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당시 모더니즘 미술의 총아로 조명을 받았으나, 현실과 거리를 둔 모더니즘 미술의 한계와 폐쇄성에 실망하고 모더니즘의 절대성, 완전성, 유일무이성 등에 저항하고 균열을 내는 미술 작업을 시도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도쿄도 현대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홍콩 M+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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