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기분 좋은 협상만 있지 않으니…. /언스플래쉬

최근 작업실을 정리하게 됐다. 계약한지 반년이 겨우 넘어가는 공간이었다. 더불어 ‘당근 마켓’의 알림이 불티나게 울리는 중이다. 오랫동안 공간을 유지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구입한 가구며 가전제품은 모두 새것에 가깝지만, 어쩔 수 없이 팔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작업실의 물건은 집으로 들이기엔 불필요하고 헐값에 처분하기는 아까운 것들이었다. 중고 제품을 한 번에 매입한다는 사이트에 문의하자 반의반 값도 안 되는 견적을 받았다. 망연한 얼굴로 결심했다. 내가 직접 팔아야겠다고. 힘차게 기합을 넣고 팔을 걷어붙였다. 그간 구입한 것들을 다시 하나씩 차분히 살피고 다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던가. 멀리서 보았을 땐 그저 흥미롭게만 보였던 판매의 현장에 직접 뛰어드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중고 거래 플랫폼을 애용하는 사람이지만, 그간 내가 판매했던 것은 필요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살림살이나 더 이상 입지 않는 옷가지같이 아주 소소한 것이었다. 팔려도 그만, 안 팔려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임했기에 큰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거금을 주고 산 물건이었기에 아무래도 본전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이트에서 얼마에 구입했는지, 사용감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구체적인 정보를 최대한 꼼꼼하게 적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의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대부분의 첫 질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네고 가능한가요?’

이처럼 중고 거래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네고’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 영어 단어인 ‘negotiation’을 줄인 것으로 협상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다. 영화 ‘대부’에서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돈 꼬넬리오는 자신의 서재에 사람들을 불러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한다. 제안이라는 말로 던지는 협박에 가까운 협상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힘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협상이기도 하다. ‘대부’만큼은 아니어도 중고 거래의 협상 역시 꽤 은밀하고 무겁게 진행된다. 서로의 제안을 들으면서 주고받는 숫자는 긴장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물론 평화적으로 끝나는 기분 좋은 협상도 있다. 얼마쯤 빼 드릴게요, 하고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면 상대도 고맙다고 대답하면서 깔끔하게 거래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얼굴을 붉히게 되는 일도 왕왕 생긴다. 자신이 원하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그렇다. 정중하게 거절하는데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채팅을 보내면서 피로감을 주는 상대를 만나면 정말이지 곤란하다. 이 협상은 결렬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소리 지르고 싶어진다. 단단히 상해버린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무엇보다 나의 정신 건강을 지키면서 물건을 거래하는 몇 가지 요령을 습득했다. 첫째, 물건의 원가에 집착하지 말자. 내가 구입했을 당시의 가격에 관해 생각하는 순간 어떤 연락이 와도 달갑지 않다. 아깝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런 감정은 되도록 빨리 버려야만 한다. 둘째, 이제 더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는 걸 기억하자.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면 중고 거래 플랫폼에 업로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필요한 사람이 물건을 갖게 된다는 걸 기억하면 속상한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셋째, 늘 승리할 수만은 없다는 걸 기억하자. 가끔은 상대의 기세에 밀려 예상보다 훨씬 값싸게 판매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럴 땐 자신의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보다 상대의 협상 기술이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거래를 진행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오히려 물건을 가져가는 상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여전히 나의 판매 목록에는 물건이 가득하다. 딴엔 다 필요하다고 구입한 것이었을 텐데. 무슨 욕심이 그리 넘쳤던 걸까. 물건을 하나씩 팔아갈 때마다 아깝다고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돌이켜보게 된다. 물건뿐만 아니라 마음도 그렇다. 미련에 가까운 감정의 찌꺼기를 처리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문제기도 하다. 비워야만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으니까.

글을 쓰는 와중에도 당근의 경쾌한 알림이 울린다. 이번에는 어떤 물건이 어떤 협상을 거쳐 누구에게 가게 될까. ‘네고 가능한가요?’ 하는 물음이 날아온다. 이번만큼은 서로 승리하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고 싶다. ‘네고 가능합니다. 얼마 생각하시죠?’ 돈 꼬넬리오의 확신에 찬 표정을 흉내 내며 협상에 돌입한다. 상대가 숫자를 부른다. 자,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