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오십 세 번째는 병진(丙辰)이다. 천간(天干)의 병화(丙火)는 불길이 맹렬하게 타는 모습이다. 지지(地支)의 진토(辰土)는 물을 머금은 옥토(沃土)다. 동물로는 붉은 용이다.
병진일주는 물상으로 비옥한 대지 위에 떠있는 태양이 밝게 빛나는 모습이다. 거기에는 물이 있어 풀과 꽃들이 피는 생명력이 넘치는 땅이다. 마치 봄철 모내기하는 풍경이다. 만물을 생육하는 역할을 하고, 길러내고 치유하는 부성애나 모성애를 가지고 양육을 잘하는 일주다.
예의와 신의가 잘 조화되어 있다. 예의를 중요시하며, 남을 존경하면서도 자기를 잘 나타내려는 경향이 있다. 명랑쾌할하고 낙천적이며 불같은 성정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면도 있으나, 일을 처리하는데 투명하고 성실 근면한 모습을 보이며 자상하고 친절하다. 타고난 재주와 재능이 뛰어나 그것을 잘 단련시킬 수 있으므로 운동선수나 연예인 등의 직업에도 강점을 보인다.
병진일주의 태양은 식물이 잘 자라는 땅을 만나 아낌없이 키우는 것이 제 역할이다. 또한 묵묵하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희생과 봉사정신이 있어 잘 베풀고, 어려운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이 많다. 대체적으로 주변의 평이 좋은 편이다.
이런 인물로는 춘추시대 초나라에 손숙오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어릴 때 밖에서 놀다가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았다. 옛날 중국에서는 쌍두사(雙頭蛇)를 본 사람은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손숙오는 쌍두사를 죽여서 땅에 묻어버렸다. 집에 돌아와서 밥도 먹지 않고 근심하자,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물으니 손숙오가 울면서 대답했다. “오늘 제가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았습니다. 예부터 이런 뱀을 보면 죽는다고 했으니 저는 곧 죽을 겁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가 물었다. “그 뱀은 지금 어디 있느냐?” 그러자 손숙오가 대답했다. “그 뱀을 또 다른 사람이 보면 죽을까 걱정이 되어 죽여서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이 말은 들은 어머니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내가 듣기로 남모르게 덕을 베푸는 사람은 반드시 보답을 받고, 남모르게 선행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한다.”
여기서 음덕양보(陰德陽報)라는 고사가 나왔다. 훗날 손숙오는 초장왕의 책사가 되었다. 용기와 지혜로 깊은 사려를 지녔던 인물이었다. 둑을 쌓고 많은 저수지와 개간지를 만들어 쌀 생산력을 증가시켜 백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힘썼다. 그는 맡은 일에 부지런했으며, 항상 청빈한 삶을 살았다.
병진일주 여성은 기품이 있고, 외모가 수려한 경우가 많다. 자식이 태어나면 남편과는 인연이 약해질 수 있다. 몸도 병약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남자는 자존심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잔소리 하지 않고 묵묵히 믿어줄 배우자를 선호하며,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편이다. 다른 이성에 눈을 돌리는 단점이 있다. 남녀 모두 배우자에게 불만이 있으니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 편안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
병진일주의 진(辰)은 동물로는 용이다. 변화무쌍한 용(龍)의 특성상 변덕이 심할 수도 있다. 용은 안다. 자신이 이제는 승천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준비해 왔다. 지금은 태양이 있으므로 비가 오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병진은 아주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은 고독하기도 하다. 스스로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승천할 기회는 온다는 것을.
영국의 작가 대니얼 디포(1660∼1731)가 1719년에 발표한 해양모험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고독과 기다림의 상징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체류한 기간이 무려 28년 2개월 19일이다. 무인도에 표류했다가 탈출하는 날까지의 기간이다. 섬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생존하면서 때가 오기를 참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 당시 1688년에는 영국이 군주제에서 의회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들을 폐지시킨 명예혁명 정신은 계몽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다. 유럽인들의 자유와 번영을 위한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기였다. 평범한 젊은이들에게 바다로 떠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행이며 모험이지만, 곧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대니얼 디포는 찰스 2세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제임스 2세가 가톨릭을 신봉하자, 그를 폐위하자는 몬머스의 반란(1685)에 참가했으나 참패했다. 그 결과 영국에서 추방되어 3년 간 유럽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윌리엄 3세가 이끄는 개신교 세력이 제임스 2세를 몰아내는데 성공을 하는 명예혁명(1688)이 일어나자, 디포는 영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재개했으나, 엄청난 빚을 지고 파산하게 된다. 그러자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썼다.
알렉산더 셀커크라는 영국인 선원이 지금 칠레의 영으로 되어 있는 마사티에라는 태평양의 한 섬에 조난 되어 4년 간 생존한 실제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자기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을 집필했다. 출간되자 크게 성공을 거둔다.
로빈슨 크루소는 스스로 자기 일을 만들어 거기에 몰두하면서 외로움과 싸우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 모습은 캘빈주의를 따르는 철두철미한 장로교 신자의 입장에서 묘사된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신의 은총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시각이다.
작가는 ‘우리가 소유하지 못해 느끼는 불평은 모두 우리가 소유한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말한다. 무인도에서는 오직 생존에 몰두하기에 타인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항상 타인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항상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다’라고 말한다. 바쁜 와중에도 그런 시선을 피한 나만의 공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타인이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력을 방해하고, 지금 하고 있는 생각으로부터 딴 곳으로 주의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이다. 진정한 나를 알고, 나의 삶을 살고 싶다면 해볼 만한 시도이다. 오늘의 고통을 내일의 희망으로 바꾸는 용기를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