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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봉화에 베트남 마을이 조성되는가?

류중천 시민기자
등록일 2023-07-11 18:39 게재일 2023-07-12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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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베트남 왕조 후손 화산 이씨 정착
이장발의 정신을 기리며 세운 봉화군 충효당.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정자를 보유하고 있는 봉화. 베트남과 관련된 충효당이란 특별한 정자도 있다.

봉화의 베트남 마을 조성사업 중심에는 베트남 왕조 후손인 화산 이씨가 있다. 화산 이씨는 12세기 생긴 귀화 성씨로 시조는 베트남 리 왕조(1009~1226)의 마지막 왕자인 이용상이다.

당시 베트남 국명은 대월이었다. 이용상은 황제 영종의 7남. 쩐투도 장군의 쿠데타로 전복된 뒤 새로 집권한 진씨. 이씨 왕족 전멸작전에 따라 목숨을 잃을 위기에 몰리자 이용상은 탈출해 지금의 황해도 옹진군 화산에 상륙했다.

고려 조정은 이용상 왕자와 필담으로 대월 왕자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고려 여인과 혼인시켜 고려에 정착하도록 도왔다. 이때 고려 왕은 화산 이씨라는 성씨를 선물했다. 오늘날 화산 이씨가 생긴 유래다.

올해로 베트남과 수교 30주년을 맞았다. 1990년대 초 한국과의 국교 수립을 앞두고 있던 베트남 정부는 13세기 초 이후 멸족된 줄로만 알고 있던 옛 이씨 왕조의 후손들이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매년 화산 이씨 종친회장을 탕롱(베트남 북부의 고대 도시)에 모셔져 있는 종묘(宗廟)의 제주(祭主)로 특별히 초청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인과 동등한 법적 대우 및 왕손 인정 등의 호의를 베풀고, 베트남 인사가 한국을 방문할 경우 이들을 방문하는 것도 관례가 됐다. 화산 이씨가 양국 관계에서 가교 구실을 하고 있는 것.

화산 이씨 후손 이장발(1574~1592)은 19세 나이로 왜적과 싸우다 문경새재에서 전사했다. 그 애국심을 기려 충효당이라는 정자를 세우게 된다. 봉화 출신인 이장발은 어려서부터 재질과 의지가 굳었고 효성이 남달랐다.

충효당은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문수산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1750년경 후손과 유림에서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고, 전면 4칸 측면 2칸반 규모의 팔작지붕인데 평면은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이다.

세월의 정취가 정겨움으로 다가오고 유난히 큰 충효당 현판이 근엄하게 내려다보는 마루에는 이장발의 순절시 편액과 충효당기의 기문 편액이 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중후한 품격으로 고고한 옛 멋을 풍긴다.

충효당 좌측 뒤쪽에 비각 ‘충효당 화산이공 유허비’ 역시 이장발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봉화군이 베트남 마을을 조성하려는 곳이 바로 충효당 일대다. 거기에 베트남 전통마을과 리 왕조 유적지 재현 공간, 연수, 숙박, 문화 공연장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이장발의 행적을 더듬으며 베트남 리 왕조 흥망성쇠의 이치를 새겨보고, 충효당 앞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베트남 마을을 기대해 본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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