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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출현과 중세미술의 발달

등록일 2023-03-20 19:32 게재일 2023-03-2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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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년 성인 누르시아의 베네디토가 몬테 카시노에 세운 수도원.

중세미술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수도원이라는 공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도원은 오로지 종교적 삶에 헌신하기 위해 속세와 거리를 두고 세워진 신앙 공동체이다. 중세시대의 수도원은 근본적으로 종교적 목적을 위해 지어졌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의 기능을 수행했다.

중세시대에는 보편 교육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맹이었다.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은 고위 계층에 제한된 일종의 특권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지식이라는 것은 일상이 이루어지는 좁은 영역 안에서 경험적으로 얻어진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중세시대의 상황 속에서 수도원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지식이 생산되고 그리고 그것이 보존되고 전수된 곳이었다.

수도사들은 신의 뜻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성서를 읽을 수 있어야 했고 수도원에서는 성서의 내용을 보존하고 보전하기 위해 필사작업이 이루어졌다.

수도원은 고행수덕을 삶으로 실천한 종교적 은둔자들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성인 안토니우스(251∼346)는 일찍이 이집트 광야에서 홀로 은둔 수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수도자들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홀로 은둔생활을 하던 수도자들이 서서히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수도원의 기원이 된다. 최초의 수도원은 터키의 카파토키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방의 교회들이 이를 받아들여 수도원이라는 종교적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서유럽지역에서 가장 먼저 수도원이 세워진 곳은 프랑스의 시골마을 리귀제(Ligug<00E9>)이며 316년 뚜르(Tour)의 주교 마르티노가 설립했다. 372년에는 리귀제 인근 마을인 마르무티에르(Marmoutier)에도 수도원이 세워졌다. 지금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당시 갈리아 지역에 특히나 많은 수도원들이 지어졌으며 5세기 무렵에는 무려 230여 개의 수도원이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개별 수도원들은 각자 나름의 규율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수도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종교적으로 거룩한 삶을 실천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여러 부작용들이 나타났다.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자 수도원들은 일정한 규칙과 규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세워진 곳이 엄격한 규율로 잘 알려져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이다. 529년 누르시아의 성인 베네딕토(480∼547)는 몬테 카시노에 수도원을 설립하면서 종교적 이상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면서 실질적으로 지켜야할 수도원 규칙서(Regula Sancti Benedicti)를 만들었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규칙서의 핵심 내용은 경건한 기도생활과 지혜로운 실천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라틴어 문구가 ‘Ora et Labora’이며 우리말로는 ‘기도하고 일하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강한 어조의 이 규율은 수도사들에게 성서를 읽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함과 동시에 육체적인 나태함을 철저히 금하면서 동시에 육체노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베네딕트회의 규칙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쓰여 있다. “나태함은 영적인 것이다.

따라서 수도사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 해야 하고 성서를 읽어야 한다. 매일 아침 6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육체적인 노동을 그 이후 저녁 6시까지는 성서를 읽어야하고 저녁 기도시간 까지는 계속 일을 해야만 한다” 수도회의 이 같은 규율은 육체노동이 종교적 영성활동과 밀접하게 닿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베네딕트 수도회에서는 수도사들이 잠시라도 나태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도와 거룩한 독서 그리고 육체노동이 조화되도록 공동체의 일과를 구성했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엄격한 규율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삽시간에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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