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여기서 신발을 벗어요? 산을 그냥 다 맨발로 올라가요? 네, 다 맨발로 올라가는 거예요. 처음 맨발 등산을 제안한 한 사람만 이 상황을 알고 있었나 보다. 따라나선 네 명은 어리둥절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한 명 두 명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었다. 뒤이어 제안자가 신발 들고 다니기 불편하면 여기 벤치 아래 그냥 놔두고 가면 된다고 했지만, 네 명은 기어코 신발을 배낭에 넣었다.
맨발 걷기라니, 살짝 긴장감이 느껴진다. 모두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디뎠다. 머뭇머뭇하던 중 누군가 정상을 목표로 하지 말고 한 시간만 걷자고 하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이 동의한다.
이렇게 맨발로 줄지어 산에 오르니 남들이 보면 꽤 오래된 친구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서로 이름도 잘 모르는 사이다. 이들은 오늘 60대를 위한 가치 있는 여행 방법을 교육하는 모임에서 한 사람의 제안이 옆 사람으로 꼬리를 물어 갑자기 함께하게 된 것이다. 60대라고 해도 모임 주제가 여행인 데다,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신청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적은 것 같다.
그래도 처음 올라갈 때는 맨발 산행의 효과 같은 건강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맨발로 걸을 때는 터널 위는 안 되고 땅밑까지 다 흙으로 된 산을 걸어야 한단다.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지는 모르겠지만, 맨발로 땅을 디디면 사람 몸의 양전하가 땅의 음전하와 만나 중화되는 접지 효과로 건강이 좋아지는 것이란다.
그러나 10m도 못 가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너도나도 인증샷을 찍자고 한다. 맨발을 한 발씩 내밀어 사진을 찍었다. 산에 다 올라가서는 나란히 서서 셀카도 찍었다. 이제 내려올 때 우리의 대화는 금세 정치, 결혼, 예능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다.
우리 다섯 명이 찾은 D 산은 도시 가까이에 있는 작은 산이라 그런지 발바닥이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동창의 저서 ‘맨발로 걸어라’가 매스컴을 탄 후 이 산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 산에서 매주 맨발 걷기 강좌도 진행되고 있었다. 맨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니 두고 간 신발이 제자리에 잘 있다. 옆에 다른 신발도 하나 놓여있다. 배낭이 없는 누군가가 두고 갔으리라. 한 시간 만에 신발을 신으니 신발이 이렇게 푹신했던가 부드러운 감촉에 감탄하면서도 맨발로 걸었던 80분이라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맨발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뜬금없이 최희준의 노래 ‘맨발의 청춘’이 생각났다. 노래에서 맨발은 길거리 청춘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의미하지만, 우리의 맨발에 그런 열정이 담겨 있을 리 없다. 행여 다칠까 조심조심 올라가느라 길을 잘 못 봐서 내려올 때는 길을 잘못 들기도 했다.
우리가 맨발로 산행 한번 했다고 청춘 같은 건강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공동의 관심으로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활기를 회복했다는 기분이 든다. 시니어를 위한 문화 프로그램이 제대로 가치를 발휘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