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경<br>동화작가
최미경
동화작가

평일 오전 도서관에 갔다. 코로나로 전면 개방은 되질 않지만 대출, 열람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서관 로비에 전시된 책 한 권 집어 들고 로비에 띄엄띄엄 배치된 소파에 잠시 기대앉았다. 유리천장으로 해가 쏟아낸 빛물이 그대로 쏟아져내려와 나의 무릎과 어깨 그리고 머리가 투명하게 젖어가는 듯 했다. 불쑥 보르헤스의 말이 떠올랐다. 만약 천국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천천히 들어 올려 더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조금씩 더 깊게 책에 집중할수록 눈앞에 흐르는 한 줄의 문장과 귓가에 흐르는 맑고 차가운 한 줄의 공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온몸의 세포들이 하나씩 일어나 크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마음에 무언가 가득 차올랐다. 행복이었다.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마음은 늘 불안과 걱정을 반복했고 실망과 미움이 지속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왜, 대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에 대해 분노하며 잃어버린 것에 대해 화도 나고 예민해져서 ‘이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해보겠다는 마음에 몸은 항상 몹쓸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 상황’이라는 것이 나 혼자 어떻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난관과 마주쳤을 때마다 불안은 더해 졌고 그 불안이 우울을 데려다놓기도 했다.

네 개의 계절을 다 보내고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아이들은 정상등교를 하지 못하고 사적인 모임도 어렵다. 그렇게 보면 작년 이맘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는 장치를 우리 몸과 마음은 그 1년의 시간동안 배우고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영위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고 고마움을 느끼는 섬세한 삶의 관찰자 눈이 바로 그것이다.

매일 매일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일, 보고 싶은 이와 전화해 점심약속을 잡는 일, 주말이면 아이들과 근처 미술관에 가서 새로 바뀐 작품에 대해 수다를 떨었던 일, 공원을 거닐며 큰 소리로 웃고 김밥이며 과자를 나누어 먹었던 일, 도서관 3층 쉼터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던 일, 영화관에서 셋째의 팝콘을 집어 먹던 일 등등 정말 아무렇지 않게 했던 모든 일들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1년 동안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봄을 전진하는 이 시공간에서 우리는 감사한다. 가족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을 감사하고 아이들 뺨에 입 맞출 수 있는 이 시간을 감사한다. 예약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미술관의 그 공간에 대해 감사하며 띄엄띄엄 순번대로 앉을 수 있는 도서관의 그 공간에 대해 감사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고 신나게 뛰어 놀 수 있으며 어깨동무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고 또래와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감사한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을 천천히 하며 책을 덮고 책이 전시된 로비를 돌아서 한껏 충전된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