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동사다
삶은 동사다
  • 등록일 2021.04.07 19:55
  • 게재일 20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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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일러스트= 김민서 제공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쉼 없이 움직인다. 일어나고 일하고 배우고 만나고 말하고 마시고 노래한다. 잠을 자는 시간에도 숨을 쉬고 몸을 뒤척인다. 움직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삶이라는 명사를 파생한 동사는 ‘살다’이다. ‘살다’의 어감을 느껴보면 흥미롭다. 숨을 쉬는 소리 ‘ㅅ’에 양성모음 ‘ㅏ’를 붙이고 흐르는 어감을 가진 ‘ㄹ’로 받쳐놓았다. 졸졸, 솔솔, 돌돌, 같은 흉내말을 보면 ‘ㄹ’을 알 수 있다.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돌이 구르는 소리이다. 끊어지지 않는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지는 생생한 언어이다. ‘살림살이’를 보라. 구르는 소리가 셋이다. 이렇듯 ‘살다’는 생명의 언어며 ‘삶’은 생명의 일생이다.

가다, 오다, 뛰다, 막다, 살다, 눕다, 자다, 깨다, 졸다, 싸다, 먹다, 놀다, 씹다, 감다, 놓다, 끄다, 따다, 푸다, 붓다, 널다, 펴다, 재다, 괴다, 긁다, 씻다, 썰다, 켜다, 끄다, 베다, 휘다, 굽다, 쐬다, 읽다, 찌다, 지다, 말다, 쥐다, 펴다, 듣다, 차다, 빗다, 쌓다, 파다, 쓰다, 입다, 때다, 앉다, 얹다, 주다, 갈다, 찧다, 찍다, 꺾다, 깎다, 묶다, 막다, 채다, 호다, 접다, 짚다, 지다, 뜨다, 닫다, 열다, 밀다, 풀다, 돌다, 짜다, 불다, 빼다, 낚다, 닦다, 파다, 캐다, 울다, 웃다, 매다, 메다, 푸다, 넘다, 기다, 박다, 빨다, 널다, 패다, 쪼다, 젓다, 뜨다,

우리말에는 두 음절 동사가 많다. 모두 삶의 기본이 되는 행위라는 특징이 있다. 삶이 단순하던 시절에 만든 가장 단순한 언어이다. 삶이 복잡해지면서 두 동사가 결합했다. 살아가다, 쥐어짜다, 동여매다, 낚아채다 등이다. 살아있는 세포처럼 동사도 단음절에서 다음절로 진화한 것이다.

식물의 동사는 몇 개 없다. 뿌리를 뻗다, 물을 빨다, 가지를 벌리다, 꽃이 피다, 지다, 열다 등이다. 무생물은 움직일 수 없으므로 동사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말은 ‘돌이 구르다’라고 표현한다. 가만히 따져보면 서술어 ‘구르다’는 자동사(自動詞)이나 알고 보면 ‘무엇이 돌을 굴리다’로 타동사(他動詞)이다. 움직이고 구르는 힘은 스스로가 아닌 타력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생물에 붙이는 동사는 몇 개 없다. 이렇게 동사를 비교해 보니 인간이 얼마나 왕성하게 활동하는지 실감이 난다.

동사 ‘살다’는 우리말 곳곳에 있다. 나이를 말할 때 ‘살’을 쓴다. 다섯 살, 서른 살, 일흔 살이라고 한다. 살아가는 일에도 ‘살이’를 붙인다. 살림살이, 옥살이, 귀양살이, 더부살이, 타향살이, 처가살이, 겨우살이, 이렇게 보니 사람에게 ‘살다’는 없어서는 안 될 동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먹여 살리다’라고 말하겠는가.

삶의 마지막 동사는 ‘죽다’이다. 죽음에 이르면 하나씩 멈추고, 마지막 움직임이 멈추면 삶을 마감한다. ‘죽다’는 어두운 음성모음에다 닫히고 막히는 소리 ‘ㄱ’이 받침이다. ‘주욱’을 보자. ‘주우우’ 이어지다가 ‘ㄱ’에서 숨이 끊어지고 문이 닫힌다. 어감으로 보는 죽음은 끝이며 단절이다.

돌아가시다. 사망하다, 별세하다, 운명하다, 타계하다, 작고하다, 기세하다, 땅에 묻히다, 밥숟가락 놓다, 숨이 끊어지다, 영원히 잠들다, 다음 세상으로 떠나다, 유명을 달리하다, 요단강 건너다, 저승사자를 따라가다, 숨이 멎다, 심장이 멈추다, 영면에 들다, 열반에 들다, 입적하다, 선종하다, 서거하다, 심장박동 그래프가 수평을 그리다, 황천길로 가다, 골로 가다, 북망산 가다, 칠성판(七星板)을 지다, 올림대를 놓다(속된말), 사자밥을 떠놓다(속된말)

응용하거나 파생하거나, 우리말은 하나의 뿌리를 가진 동사를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이러한 표현 뒤에는 상황, 장소, 세계관 같은 것들이 숨어있다. ‘돌아가시다’는 영혼의 고향이 있다는 세계관이고 ‘저승사자를 따라가다’는 내세관이다. 죽음은 끝이나 소멸이 아니라 다음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이다. 이승을 버리거나 다음 세상으로 가는 일이라는 것이 우리네 정서이다. 인간의 죽음에도 은유와 철학이 숨어있는 게 우리말의 특징이다.

우리말에서 ‘죽다’는 생물에만 쓰지 않는다. 시계가 죽었다, 팽이가 죽었다, 불이 죽었다, 처럼 무생물에도 쓴다. 또한 풀이 죽었다, 사기가 죽었다, 끗발이 죽었다, 처럼 감정에도 쓴다. ‘캬! 죽인다’ 또는 ‘죽여 준다’처럼 감탄에도 쓴다. ‘좋아 죽겠어’ 또는 시어(詩語)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처럼 역설에도 쓴다.

우리 사는 세상에 모든 것이 정지한다고 가정해보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구에 동사 ‘불다’가 없고 ‘흐르다’가 없고 ‘치다’가 없으면 바람도 멈추고 물도 멈추고 파도도 출렁이지 않는다. 움직임이 없으면 죽음의 세계이다. 동사가 없으므로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달처럼,

삶은 동사다. 쉼 없이 움직이다보면 부딪치고 엎어지고 깨지기도 한다. 아파서 울고 서러워서 가슴을 치기도 한다. ‘엎어지다’가 있으면 ‘일어나다’도 있다. ‘울다’가 있으면 ‘웃다’도 있다. 그러니 기왕 한 세상을 사는 거, 활기차게 살아볼 일이다.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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