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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메이징, 어머니

등록일 2021-03-09 20:18 게재일 2021-03-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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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산이 저문다 / 노을이 잠긴다 /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을 주인 잃은 은수저로 그려내 주고 있는 김광균의 시 ‘은수저’의 첫 연이다. 옛 어른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였다. 시인은 아들의 부재에 목놓아 울 수 없기에 그 끝모를 슬픔을 은수저에 눈물을 고이게 하는 것으로만 그려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슬픔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천붕’(天崩)이라고 한다. 나는 두 분의 아버님을 보내면서 하늘이 두 번 무너졌다. 그러나 두 분 아버님께서 이 땅에서의 오랜 투병을 끝내고 하늘에서 평안히 쉬실 것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까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자식의 죽음은 또 다를 것 같다. 천붕보다 덜 알려진 ‘참척’(慘慽)이라는 말이 있다.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은 일을 이르는 말이다. 먼저 오면 먼저 가는 것이 순리라 하지만, 어디 삶이 순리대로만 흘러가던가. 죽음의 순서 또한 나이순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연세 드신 분들이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참척은 아무래도 우리 귀에 익숙치 않을 것이다. 사고나 병이 아니면 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가는 일은 좀체로 일어나지 않는다. 자식의 죽음은 변고(變故)다. 참혹한(慘) 일이고 설령 참혹하기까지는 않을지라도 근심스러운(慽) 일이다. 자식 잃은 침혹한 변고에 김광균 시인처럼 담담히 은수저에 눈물을 담아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 부모 마음이라고 했지만 아버지의 마음과 어머니의 심정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열 달 동안 자식을 자신의 몸 안에 품고 사랑과 영양분을 주며 함께 있다가 이백 여개의 뼈마디가 다 벌어지고 무른다는 출산의 고통을 겪고 세상에 내놓은 어머니이다.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다 해도 어머니의 고통과 수고는 자연분만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인가.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가 ‘어머!’라는 감탄사로 반응하고 ‘어메이징’(amazing) 하며 놀란 적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렇기에 자식 또한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이 아버지를 대하는 마음과 같지 않을 게다. 나도 아버지이지만 자식으로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세상에 나온 아이가 가장 처음 배우고 하는 말이 ‘엄마’라고 한다. 이건 세계 공통 현상이다. 어머니는 엄마이자 밥이다. 엄마와 맘마는 같은 말이다. ‘ㅁ, ㅂ, ㅃ’과 같은 입술소리를 가장 먼저 낸다는 유아의 언어 발달 단계에 관한 언어학의 지식에 기댈 것도 없이 이는 상식에 가깝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양부모뿐 아니라 친부모의 자녀 학대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어머니가 자식을 죽이는 사건이 잊을 만하면 귀를 울린다. 세상이 변해도 어머니는 그대로이고 모성(母性)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어머니를 향한 밝은 놀람의 ‘어메이징’, 긍정적 감탄의 ‘어머!’가 다시 우리들 입에서 많이 퍼져나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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