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황금시대의 시작은?
신라 황금시대의 시작은?
  • 등록일 2021.03.08 19:45
  • 게재일 202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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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 지상식 적석목곽분의 금제 장신구류.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황금의 나라’라는 말이 익숙한 경주다.

사실 신라 고분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황금으로 만든 금관(金冠) 때문이다. 황금유물은 경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금으로 만든 유물은 금관, 목걸이, 귀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그릇, 칼장식 등 다양하다.

이것들은 사람을 치장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했다. 특히 금관(머리장식)은 대형 무덤에서 발견되고 있어서 무덤의 주인공이나 사용된 시기와 관련하여 궁금증을 유발한다.

경주 무덤 중에서 금관이 출토된 곳은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북분 등이다. 이들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마립간기(麻立干期)라고 불리는 시대에 만들어지며, 왕이나 왕족의 무덤으로 보고 있다. 사실 왕만이 금관을 쓴 것은 아니라서 앞서 이야기한 5기의 무덤이 모두 왕의 무덤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또한 금관이 출토되지 않아도 왕릉으로 보는 무덤도 있다. 황남대총 남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황남대총 남분은 북분과 연결되어 황남동에서 가장 큰 무덤이며, 남북 120m, 동서 80m로 초대형분으로 분류된다.

남분보다 작은 크기의 무덤인 금관총, 천마총, 서봉총 등에서 금관이 나왔기 때문에, 1975년 7월 1일 발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이 무덤에서 금관이 나올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무덤 주인공의 머리에는 금동관(金銅冠)의 흔적만 확인됐을 뿐이다. 그날 아침, 금관이 출토됐다고 금관 사진을 오려 붙여 기사를 쓴 신문기사는 분명한 오보였다.

황남대총 남분 발굴 이전까지는 신분이 높아야만 금관을 착용했던 것으로 인식했다. 아니 왕만이 금관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직도 금관이 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뚜렷한 답은 없다.

주목할 점은 무덤 주인공이 착용한 장신구(裝身具)의 조합상이다.

머리장식, 가슴걸이,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 등이 하나의 조합으로 모두 출토되는 것과 이 조합에서 하나 혹은 두 개 정도가 빠져 있는 경우만 신라 고분에서 확인된다.

전자는 신분이 가장 높은 왕이나 왕족으로 볼 수 있으며, 후자는 차상위 계층이다.

이것으로 보면 황남대총 남분에서는 모든 장신구 조합이 확인되므로 분명히 왕에 버금가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금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무덤 주인공의 신분이 낮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금관은 가장 높은 신분을 나타내기 때문에 황남대총 남분의 시기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황남대총에서는 금동관(金銅冠)과 은관(銀冠), 은제관모(銀製冠帽), 금제관식(金製冠飾)와 은제관식(銀製冠飾) 등이 확인된다.

이들 제품에서는 이전 단계보다 금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으로 보면 금관이 나타난 시기는 금이 신라에 도입된 이후 금의 수량과 금제 세공술의 변화, 장신구류의 활성화와 관련됐을 것이다.

즉 금관이 사용되지 않던 시기와 사용되던 시기가 있었으며, 황남대총 남분 이전까지는 금관이 없던 시기로 볼 수 있다.

경주 월성로 가-13호묘에서 금으로 만든 그릇이 처음 나타나며, 남분에서는 기형이 다양해진다. 이후 북분과 천마총에서는 금으로 만든 장신구나 그릇은 부장이 증가하며, 대부분의 금제품은 순금만을 사용하여 제작한다.

박형열<br>​​​​​​​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박형열
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결국 신라에서 황금은 황남대총 남분 이후 단계인 북분이 만들어지는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된다.

황남대총 북분 이후에는 금관총, 서봉총, 천마총, 금령총 등에서 금관이 출토되고 은제품은 이들 무덤보다 낮은 계층에서 사용하는 비중이 높아진다.

이러한 현상은 계층별로 금속 장신구의 재질 차이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왕권의 강화와 장신구류의 발달로 인한 금세공술의 발전을 짐작케 한다.

신라에서 황금유물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경주 월성로 가지구 13호묘를 통해 서기 4세기 말경으로 인식된다.

이후 황남대총 남분이 조성되던 5세기 전엽에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점차 금의 비중이 높아지다가 황남대총 북분 단계인 5세기 중엽부터 금관을 비롯한 다양한 금제품이 등장한다.

즉, 신라 왕과 귀족의 무덤으로 이용된 돌무지덧널무덤의 최전성기이며, 그 무덤 속에는 황금으로 만든 금관, 가슴걸이,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등 수많은 유물이 묻혀있다.

이 시기가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황금의 나라’ 이자 가장 화려한 신라가 잠들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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