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수 우

참, 참, 오래된 집입니다

나팔꽃이 피고 지며

바람이 들며나며 지은 집

쪽창을 밀고 들어온 저녁

사진틀과 옷가지를 청보라로 물들이던 집

삶이 가진 불안과 희망이

기와가 되고 문지방이 되고

죽음이 주는 설움과 평화가 만든

마루와 벽장 속에는

알맞게 삭은 어질병이 살아갑니다

한때 바삭거리던, 이젠 눅눅한 그리움이

하나하나 벽돌이 된 그 집에서

젖었다 마르곤 하는

나와 나의 사람들과 내 추억의 몸들

녹슨 못들로 총총한 당신은

깨꽃과 산능선과도 잘 어울려

어떤 세상이라도 고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한 채 옴팡집으로 적막한

당신 옆구리에 무당거미 한 마리

거미줄 치며 햇살을 고릅니다

아버지를 한 채 집으로 표현하는 시인에게 깊이 동의한다. 그 집에는 나팔꽃이 피고 바람이 드나들고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사랑과 정겨움과 눈물과 헌신이 소복했던 집이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다독여 품어주고 치유해주는 세상의 그 어떤 명의(名醫)보다도 나은 아버지라는 힐링과 치료의 집이다. 늙어가면서 낡고 쓸쓸한 집이 되어가지만, 영원한 안식의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