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중앙아시아 지역 주요 고분.

경주에는 알려진 155기와 더불어 무수히 많은 신라 고분이 시내에 자리하며, 현재까지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무덤의 묘제, 구조, 형태 등이 밝혀졌다.

신라의 중심묘제는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 있다.

이들 적석목곽분이 구조적으로 매우 특이해서 ‘왜? 이 고분을 만들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발굴이 처음 이루어진 190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신라 고분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서기 4세기 후엽부터 6세기 전엽까지 집중돼 조성됐다. 이 무덤들의 주인공은 신라의 왕과 왕족, 귀족 등과 같은 지배층으로 집단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다.

‘신라 고분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라는 의문은 일제강점기 경주지역의 첫 고분 발굴과 함께 시작됐다.

발굴을 통해 드러난 신라고분은 흙으로 높게 쌓은 일반적인 고분이 아닌 형태였다. 신라 고분은 나무로 무덤방을 만들고 돌을 겹겹이 쌓아 올린 후 다시 돌 위에 흙을 덮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돌무지덧널무덤)이다. 처음 발굴한 사람들은 다른 고분과 달리 돌무지로 덮인 적석부를 확인한 이후 고분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 발굴을 진행하지 않았다. 신라 고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금관총에서 금관이 발굴된 1921년 이후이다.

1920~1930년대에는 황금유물의 기원과 함께 이 무덤의 기원도 한반도 밖에서 찾기 시작한다.

한반도에서 볼 수 없었던 이러한 무덤의 형태는 경주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그 모습이 확인된다. 그리고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이들 중앙아시아 지역 고분이 소개된다. 특히, 카자흐스탄 남부의 ‘제티수’ 지역에 위치한 ‘이식쿠르간’, ‘베스샤티스 쿠르간’, 러시아 남부의 ‘파지릭고분’ 등이 신라 고분과 비교된다.

1970년대 천마총과 황남대총의 발굴은 적석목곽분의 기원에 대한 또 하나의 확신을 낳았다.

이전의 발굴에서는 대부분 파괴된 무덤을 조사해 명확하게 구조를 파악할 수 없었다. 천마총과 황남대총 남분과 북분의 발굴은 나무곽(덧널)과 돌무지, 흙무더기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무덤형태는 중앙아시아 지역과의 유사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따라서 적석목곽분의 북방기원설이 대두됐으며, 1990년대 이후 이와 관련된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그렇다면 신라 고분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것일까?

아쉽게도 중앙아시아 지역 무덤과 신라 무덤은 같은 시대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출토되는 유물도 다르다. 또 두 지역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하여 설명하기는 어렵다. 2000년대 들어서 경주를 비롯한 울산, 포항, 경산 등지의 발굴조사가 증가하고 자료가 쌓이면서 돌무지덧널무덤의 순차적인 변화가 확인됐다. 그 이후 거리와 시간의 격차가 큰 북방기원설보다 신라에서 만들어진 무덤이라는 자체발전설이 대두됐다.

박형열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박형열
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자체발전설은 목곽묘에서 점차 목곽주위에 사방으로 돌을 쌓는 적석목곽묘로 발전하고 그 이후 적석을 쌓는 범위가 확대돼 목곽 상부에 적석을 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것은 점차 목곽이 지상화되면서 적석목곽분으로 나타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자체발전설은 황남대총과 같은 거대 지상식 무덤과, 그 이전 무덤 또는 주변 무덤과의 연결 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르면 목곽 주위에만 적석을 한 무덤이 아닌, 황남대총 등 지상화된 상부적석식(上部積石式) 무덤만을 적석목곽분으로 보고, 이 견해를 ‘자체발생설’이라 부르고 있다. 앞서 살펴본 ‘자체발전설’과 더불어 신라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볼 때, 외래(북방)기원설과 다른 ‘자생설’로 설명할 수 있다.

2010년대 이후에는 신라 고분이 자체적인 발생과 발전이 함께 이뤄졌을 가능성이 새롭게 논의됐다. 이 의견은 적석목곽분이 계통적으로 지상식(地上式)과 지하식(地下式)으로 분리되고, 황남대총이나 천마총과 같은 지상식의 경우 자체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황남리 109호분 3·4곽과 황남동 110호분 등 지하식의 경우 목곽묘에서부터 발전한 것으로 보는 등 계통에 따라 각각 다른 변화상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중앙아시아 지역의 고분 발굴이 증가하면서 이 지역 무덤 구조에 대한 다양한 모습이 밝혀지고 있는데, 기존에 알려졌던 무덤의 형태와 구조 등이 신라 무덤과는 다르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신라 적석목곽분은 신라 사람들의 차별화된 사회체계에 따라 만들어낸 독특한 무덤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무덤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아직도 많은 논의가 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으로 신라의 과거를 밝혀낼 기회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