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은 상처
의도하지 않은 상처
  • 등록일 2021.03.01 19:34
  • 게재일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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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세상에 남겨지기를 원하는 청년들은 다양한 상처의 경험이 있다. /언스플래쉬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상처에 대해 생각하는 요즘이다. 최근 여러 유명인의 학교 폭력 논란이 잇달아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깊은 곳에 꼬깃꼬깃 접어놓았던 상처를 간신히 펴서 내어놓는 사람들을 본다. 대부분 다수가 소수를 짓누르거나 힘으로 위계관계를 정립한 경우다. 그럴 때의 참담함을 잘 안다. 나 역시 학교 가기가 끔찍하게 싫었던 사람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자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무수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상처를 받았다. 무지에서 비롯된 무례함도 있었고 비수로 꽂히는 것을 알면서 정확하게 던지는 말도 있었다. 그때의 괴로움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하지만 상대의 표정과 공기와 감촉은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다. 상처받은 과거를 허공으로 탈탈 털어버렸다고 자부했지만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끝끝내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동시에 나 역시 타인에게 뾰족한 무언가를 겨누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특히 글을 쓸 때 그런 죄책감은 강해진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순한 소재로써 함부로 다루고 있는 건 아닌가. 이 모든 것이 내 결핍을 채우려는 욕심은 아닌가. 정말 그렇다면 그건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명백한 과오다. 지면에 글을 발표한 뒤에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의 방식으로 다가갔다면 그것보다 참담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만나는 것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스스로가 너무 서투른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고 동시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상대와 사이가 깊어질수록 어쩐지 실수와 실언이 늘어 가는 것만 같았다. 문을 닫고 누구도 내 세계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식이 되었다.

이렇듯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혼자만의 세상에 남기를 자처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고립을 선택한 청년이 작년 기준으로 13만 명에 이르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이들은 6개월 이상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사회에서 마주한 다양한 상처의 경험이 있다. 당연히 학교 폭력의 피해자도 존재한다.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법과 제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동시에 가해자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사과는 피해자에게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고 건네는 힘이 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제는 가해자가 그런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라 단순한 다툼이나 학창 시절의 싸움 정도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거는 자신에 의해 재구성되기 쉬우므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기에 앞서 ‘의도하지 않았다’라는 변명만을 내어놓는 것은 자신이 게으르며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방증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반려견 보리와 산책하면서 비슷한 상황들을 자주 직면한다. 공원을 걷다 보면 이따금 보리가 귀엽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무게가 고작 3kg에 불과한 이 작은 개는 한 번 버려진 아픔이 있기 때문에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작은 소리에도 쉽게 놀란다. 하지만 그들은 보리의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기에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는다. 그러면 보리는 이빨을 드러내고 매섭게 짖는다.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예뻐해 주려는데 넌 왜 그래?” 하고 오히려 몰아세우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일방적인 대화의 전형적인 예시다. 설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내 행동이 상대에게 폭력으로 받아들여졌다면 그 또한 잘못일 수 있다. 당시의 상황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매번 서로가 그저 대화하는 줄로만 알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생긴 것이 어쩔 수 없는 모난 존재이기에 기어코 상대를 아프게 찌르고야 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면 삶은 끝끝내 초라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다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또다시 사람과 사랑을 믿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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