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br>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무리를 지어 산다는 뜻이다. 원시시대에는 사바나의 초식동물들처럼 혼자 떨어져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럿이 힘을 합치면 적이나 맹수의 공격을 막기도 쉽고 큰 동물을 사냥할 수도 있으니 그만큼 생존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는 지금도 고립되거나 소외되면 왠지 불안해지는 것은 아마 그런 습성이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들어 무슨 동호회나 팬덤이 성행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터이고.

팬덤(Fandom)이란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 즉 어떤 대상의 팬(fan)들이 모인 집단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팬덤이 시작된 것은 가수 조용필로부터라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남진, 나훈아 등 인기가수들의 팬 집단이 있었지만, 대규모의 체계적인 팬덤을 형성한 것은 조용필의 ‘오빠부’가 시초였다는 것이다. 그 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한 1세대 아이돌스타의 등장으로 조직적인 응원문화가 형성되고 팬덤의 개념이 대중화됐다. 2000년대에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등 2세대 아이돌스타들이 팬덤 문화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2000년대 이전 팬덤은 좋아하는 스타를 응원하는 지지자의 역할이 강했다면 이후에는 스타 보호 및 변호, 성공을 위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하는 서포터(supporter)로서의 역할로 확대되었다. 또한 한국을 넘어 세계전역으로 팬덤의 범위가 확산되었고 이는 한류열풍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가수뿐만 아니라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같은 특정 인물이나 브랜드에 대한 팬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고려대 성영신 교수는 팬과 스타의 관계를 ‘심리적 공생관계’라고 했다. 팬들은 스타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하게 되고, 스타는 팬을 통해서 자신의 인정 욕구나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비평가 앤드류 튜더는 팬덤이 되는 과정을 스타와 친해지는 단계에서부터 감정적인 동일시 단계, 스타의 외모를 모방하는 단계, 심리적인 부분까지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단계로 나누기도 했다,

팬덤활동은 소속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특정한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하나의 성취감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스포츠나 연예계를 활성화 시키는 등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는 한편 여러 가지 부작용을 드러내기도 한다. 스포츠나 운동선수에 열광하는 팬들이 집단 난투극을 벌이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라이벌에게 위해를 가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적 팬덤의 위험성이다. 특정 정파나 정치인의 팬덤이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형성되어 국정운영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팬덤의 심리에는 냉철한 현실인식이나 사리분별보다는 감정적 군중심리나 ‘내로남불’같은 진영논리가 판을 치게 마련이다. 정체성이나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시류에 휩쓸리거나 팬덤 같은 집단에 함몰되기 쉽고, 그런 부류가 많을수록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팬덤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잇속을 챙기려는 장사치들이나 정치꾼들의 술수에 부화뇌동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