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닥쳐온 혹한에 얼어붙은 형산강. /경북매일DB

지난 1월 8일, 한반도에는 기록적인 한파가 불어 닥쳤다. 서울의 아침 기온은 영하 18.6℃로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경북 지역의 수은주도 영하 15℃ 아래로 떨어졌다. 1964년 이래 57년 만에 제주도도 한파 경보가 발효되는 등 실로 어마어마한 한파가 한반도를 매섭게 할퀴었다.

갑자기 폭설도 내리는 바람에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고 곳곳의 수도 계량기가 동파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 오고 3년 간 한 번도 언 적이 없었던 우리 집 수도도 얼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의 일이었다. 내일 일어나면 수도가 얼지 않도록 물을 살살 틀어놔야지 마음을 먹고 잠들었는데, 그 하룻밤 만에 수도가 얼어붙은 것이다. 수도가 얼자 나는 더 이상 이 집에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수도가 얼었다는 것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씻는 건 둘째 치고 기본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얼어붙어버린 집에서 나는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짐을 싸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나는 친구 집과 아버지 집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자연재해의 피해자가 되어 (사실상)집을 잃기는 처음이었다. 얼어버린 수도가 자연스레 녹길 기다리며 며칠을 버티다 결국 동네 철물점 사장님께 수십만 원을 드리고 배관을 녹일 수 있었다. 우리 집 배관은 보일러실부터 계량기까지 싹 다 얼어붙어 있었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말이다.

이번 한파는 역설적이게도 지구 온난화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지구가 따뜻해지는데 어째서 한반도는 더 추워진 것인가. 이번에 뉴스를 보며 공부한 바에 의하면 이러하다. 겨울철 한반도의 추위는 주로 북서쪽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인데, 겨울철 한반도와 시베리아 사이에는 고맙게도 시베리아 기단을 가로막는 제트기류가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제트기류의 양 끝 지점의 온도차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이 제트기류가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한반도를 쉽게 침범하지 못하던 시베리아 기단이 마음껏 한반도로 넘어와 이번과 같은 한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요약하자면, 지구온난화로 몸살을 앓던 지구가 ‘콜록’하고 기침 한 번 한 바람에 한반도에 한파가 몰아치고 폭설이 내리고 도로가 마비되고 계량기 7천여개가 망가지고 우리 집 수도가 얼어붙고 내가 일주일간 이재민 아닌 이재민이 된 것이다.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강백수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나는 사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쓰레기를 버릴 때에도 분리수거는 대충대충 흉내만 낼 뿐, 페트병에 붙어있는 비닐 라벨을 떼거나 종이박스에 붙어있는 비닐 테이프를 제거하는 일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쓰레기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지인들을 보며 ‘뭘 굳이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나니까 문득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나에게 지구가 ‘이놈’하며 가벼운 호통을 한 번 친 느낌이었다.

지구 온난화가 불러온 한파 때문에 하얗게 얼어붙은 동네를 보며 재난영화 ‘투모로우(2004)’가 떠오르기도 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다 녹고, 이로 인해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분노한 자연 앞에서 인류의 무력함을. 인류는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이 있다고. 허나 그건 오만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고작 우리 집 수도가 어는 정도의 경고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해서 우리가 ‘지구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권한’과 같은 오만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나와 같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지구는 더욱 더 엄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항의를 해 올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