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쟁탈 3,000년 ’

조너선 홀스래그 지음·북트리거 펴냄
인문·3만7천원

지난 3천년간 인간은 평화를 꿈꿔왔지만, 전쟁은 언제나 인간의 삶을 파괴하며 아직도 우리 곁에 맴돌고 있다. 지금도 예멘과 우크라이나 등에서는 내전이 계속되고, 오래된 앙숙 파키스탄과 인도에서는 일촉즉발의 상태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정전이 아닌 휴전 상태가 지속되는 중이다. 인류 역사상 전쟁은 한시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평화라는 이상이 전쟁이라는 현실에 번번이 밀려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인간은 그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일까?

조너선 홀스래그 벨기에 브뤼셀자유대 국제정치학 교수의 ‘권력 쟁탈 3,000년’(북트리거)은 철기 시대부터 현대에 걸친 3천년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나라와 민족 간에 전쟁이 벌어지는 다양한 원인을 탐색한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조감하면서, 고대 이집트부터 중국 한나라, 로마 제국, 이슬람 제국, 냉전을 거쳐 21세기 초입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평화의 균형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를 추적한다.

저자는 이 방대한 역사 안에서 시대와 지역을 가로질러 반복돼 온 패턴을 찾아내고, 전쟁에 관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을 뒤흔들며, 국제정치의 본질을 파헤치는 질문을 던진다. 상업과 무역은 정말로 국제 평화를 증진할까? 민주주의와 참여가 전쟁을 예방할 수 있을까? 전쟁은 권력에서 비롯되는 보편적 죄악인가? 지정학적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지금, 저자는 인간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선택해 왔는가를 밝히며 우리가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이 시작되는 원인은 네 가지다. 첫째는 지배자의 권력과 야심이다. 나라의 힘이 너무 커져도, 너무 작아져도 전쟁은 일어났다. 국가의 힘이 강해지면 인근 지역을 정복하려고 공격했다. 국력이 쇠하고 내부 정치세력이 붕괴되면 이웃 나라가 쳐들어왔다. 국내 반란과 소요를 진압하려고 외세를 끌어들였다가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둘째는 안보강화다. 한 나라가 안보를 강화하기 시작하면 주변 나라들은 불안해한다. 안보력을 키우는 게 공격을 위한 것인지 방어를 위한 것인지 속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안보 경쟁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 다음은 중요 교역로를 장악하려는 욕망. 가장 대표적인 곳이 실크로드다. 고대 이란 왕국이던 파르티아제국, 인도의 쿠샨제국, 흉노 연합국 등이 실크로드를 차지하기 위해 난투를 벌였다.

마지막은 지나친 종교 신념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와 신념은 반드시 ‘성스러운 전쟁’을 일으켰다. 역사상 많은 종교가 평화와 자비를 설파했지만, 한편으로는 모두 전쟁의 원인과 근거가 됐다. 십자군전쟁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평화를 만드는 건 도덕이나 이상이 아니라 전쟁의 공포”라며 “인간의 도덕성에 기대어선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살아남으려면 권력을 키워야만 하고 권력은 일단 최선의 안보”라고 설명한다.

힘이 있으면 타인에게 지배당하지 않는다. 힘이 없으면 착취와 결핍과 학대를, 최악의 경우엔 죽음까지 강요당한다. “황금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식을 전쟁에 내보내야 했고 무거운 세금을 내야 했다. 전쟁은 수평선에 걸린 불길한 먹구름처럼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안보와 탐욕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한다. 발전은 새로운 욕망을 낳고, 인간의 욕구는 충족되지 않는다.

평화라는 이상이 전쟁이라는 현실에 그토록 빈번하게 밀려난 이유를 설명할 단 하나의 완벽한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념해야 할 점은 있다. 전쟁은 어쩌다 실수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시기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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