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정규 <br>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최근에 가수 나훈아의 ‘테스 형’이라는 노래로 2천500여년을 소환되어 온 소크라테스, ‘테스형’ 가사에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렇다. 사는 게 만만하지 않다. 힘듦의 연속이다. 간신히 버텨 큰 힘듦 없이 살아간다 싶을 때,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일이, 또 다른 힘듦으로 찾아온다.

‘테스 형’이라는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왜냐하면, 인생의 디폴트 값(default value) 즉, 기본 값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고통에서 예외인 인생은 없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고통은 숙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당신은 행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행복은 고통 없는 삶일까? 아니다. 행복을 인생의 기본 값으로 생각하는 데에서 불행이 온다. 항상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한 것일까? 아니다. 앞서 말한 바처럼, 인생의 기본 값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행복하지 못하면 죽을 것처럼 힘들어 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잠깐이라도 고통이 완화되면 행복한 것이다. 잠깐이라도 행복감을 느낀다면 행복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많이 행복해야 행복하다는 착각을 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세상을 살고 있는 한, 고통은 항상 존재하며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고통과 관련해 “삶이 있는 곳에 고통은 있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곧 살아 있는 것이다”, “고통이 없다면 얻는 것도 없다”, “살면서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다” 등과 같은 경구들이 인용된다. ‘고통이 없는 세상’이야말로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

물고기는 물이 없는 상태에서 헤엄칠 수 없다. 물고기가 헤엄치기 위해서는 물이라는 저항이 필요하다. 새는 공기가 없는 상태에서 날 수 없다. 새가 날기 위해서는 공기라는 저항이 필요하다. 인간도 고통 없이 인생을 살 수 없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저항이 필요하다.

인생은 고해(苦海)이다. 인생은 거대한 고통의 바다이다. 고통의 바다에서 태어났으면 좋든 싫든 건널 수밖에 없다. 고통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삶과 자유자재로 유유히 헤엄치며 사는 삶은 분명히 다르다.

인생은 거대한 고통의 바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고통을 만나면 우리는 고통을 두려워하거나 고통을 회피하여 어떻게든 도망치려 발버둥친다. 우리의 태어남은 우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고통은 인생의 기본 값이기에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이해야 한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피하기 때문이다.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고통 또한 우리가 부드럽고 친절하게 다루어 주기를 원한다. 인생의 기본 값이 고통이라는 것을 회피가 아닌 수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을 수용하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마주하면서, 그 참된 의미를 아는 순간부터 새로운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유유히 헤엄치며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누군가가 강제적으로 “영하 20도의 날씨에 밖에서 2시간을 서 있어야 한다”면, 이는 고통이고 힘든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영하 20도의 날씨에 밖에서 2시간을 서 있는 다면 이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오랫동안 헤어진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고 제안받고 그 일을 본인이 선택하였다”면, 이 영하 20도의 날씨는 그리 고통이 되지 않을 것이고 힘들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희망이고 행복일 수 있다.

그렇다. 수동적으로 받은 고통은 고통 그 자체이지만,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고통을 받을지 선택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 그 고통과 마주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고통을 어떻게 인지하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고통이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고통을 두려워 하지마라. 고통을 회피 하지마라. 고통을 수용하고 인내하고 지혜롭게 마주하는 것이 인생이다. 고통 그 자체는 행복도 불행도 아니다.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는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고통을 다루면 행복이고, 고통에 짓눌리면 불행이다. 고통은 자기실현의 주제이다. 고통은 더 큰 자기를 담을 수 있는 기회이다. 사람은 고통을 마주하면서 그 고통을 다루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장하는 그 과정에서 행복이 온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우리의 태도이다. 당신은 지금 고통스러운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행복이 다가올 기회가 주어졌음이니 이는 축복이다. 잊지 말자. 당신의 고통은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다는 것을, 그 어떤 것보다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