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견 구충제 펜벤다졸 이어
기생충 감염치료제 이버멕틴
치사율 저하 임상 실험 결과에
병의원·약국 등 문의전화 쇄도
부작용 우려에도 사재기 속출

한 구충제가 코로나 치사율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면서 지역 병·의원이나 약국에 소비자들의 문의와 발길이 쇄도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보다 구충제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최근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구충제는 이버멕틴(ivermectin)이다. 1970년대에 개발된 약물로 주로 머릿니, 옴과 같은 기생충 감염 치료에 사용된다. 이 약이 얼마 전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보도가 나온 후 시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병·의원이나 약국에 “이버멕틴 처방을 받을 수 있나”, “어디서 살 수 있느냐”며 찾아오는 시민들과 문의 전화에 의료진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버멕틴은 국내에서 처방 없이 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해외 배송으로 약을 구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포항시 북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보통 연초나 그해 봄에 구충제 수요가 증가하는데, 코로나 치료 효과가 알려지자 이를 코로나 예방으로까지 확대 해석해 사재기하려는 심리가 작용하면서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덩달아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구충제도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 년에 한 두 번씩 구충제를 챙겨 먹는다는 포항시민 김모(32)씨도 “해가 바뀌고 해서 식구들 것까지 사려고 얼마 전 약국에 갔더니 아이들이 주로 먹는 액상 구충제만 있었다”며 “그 뒤론 지나가다 약국이 보일 때마다 들러 한 개씩 쟁여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충제 품귀현상은 최근 몇 년 새 흔히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애완견 구충제인 펜벤다졸이 말기암 환자에게 치료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며 비슷한 화학구조를 지닌 사람 구충제 알벤다졸까지 함께 수요가 늘었다. 암환자뿐만 아니라 알벤다졸이 비염이나 아토피피부염, 관절염, 당뇨 등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앞다퉈 사재기를 했다.

정작 어패류나 덜 익은 육류 섭취로 구충제가 필요한 ‘진짜 환자’들은 약을 구하기 어려워 발을 구르는 실정이다. 주부 심모(45·포항시 북구)씨는 “작년 3월쯤 아이가 갑자기 항문 주위가 가렵다며 밤에 자다가 울고불고 난리가 벌어졌는데, 요충 때문인 것 같아 급한 대로 집 근처 약국을 몇 군데 돌아다녔지만 구충제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며 “가뜩이나 구충제를 구하기가 ‘하늘 별 따기’인데 이제는 코로나 치료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충제의 코로나 치료 효과는 최근 코로나19 환자 1천4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11건의 임상시험 결과에서 밝혀졌다. 지난 4일 영국의 데일리 메일 인터넷판을 통해 이버멕틴이 코로나 치사율을 최대 80%까지 감소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실험 결과에서는 이버멕틴이 코로나 치사율을 크게 낮출 뿐만 아니라 환자 몸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제거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대 2배 단축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이버멕틴은 다리 부종이나 눈 염증, 변비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다른 약과 함께 복용했을 때 혈압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으며 간 손상, 구토, 설사, 복통, 현기증이 나타나는 것으로도 보고됐다. 대한약사회도 이버멕틴과 관련해 “식약처의 정상적인 허가 절차나 인증과정을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복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지금까지 이버멕틴과 관련된 임상시험을 살펴본 결과 투여 용량, 병용 요법이 일관적이지 않다”며 “추가 모니터링이 필요해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론을 내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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