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시대
불확실성시대
  • 등록일 2020.11.19 18:28
  • 게재일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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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 <br>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작년 말 중국 우한시에서 발생한 신종폐렴이 일 년이 다 되도록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3월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 선언을 했다. 팬데믹은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 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로, WHO가 나눈 전염병 경보 6단계 중 마지막 등급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세계 191개국에서 5천400여 만 명의 환자가 발생해서 130여 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 된 이번 팬데믹 상황은 앞으로 얼마를 더 지속할지 불확실한 상태다.

불확실성(不確實性)이란 미래에 전개될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거나 어떤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명확히 측정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엔트로피증가법칙처럼 세상이 복잡다단해질수록 불확실성도 따라서 증가한다. 표준화된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화시대에는 미국이 국제정치, 국제금융, 국제무역에서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의 예측 가능성을 어느 정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였다. 그런데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진행되고 ICT 혁명이 기술적으로 가세하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다. 그것은 동시에 불확실성도 가중시켜 미국 버클리대 아이캔그린 교수는 “세계가 초불확실성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선언할 지경에 이르렀다.

농경사회에서는 주로 자연현상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불안의 요소였다. 화산이나 지진 같은 직접적인 재해는 물론 가뭄이나 홍수 등으로 농사를 망치게 되면 생계가 어려워지므로 어떻게든 기후변화를 예측해 보려는 노력을 했다.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은 하늘의 뜻으로 알고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과 정성으로 불안을 덜고자 했다.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사실뿐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은 지금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 기업을 죽이고 빚과 세금만 늘리는 포퓰리즘 경제정책의 향방도 오리무중이고, ‘내로남불’의 이중 잣대로 법치를 파괴하는 망나니 춤의 전망도 예측을 불허한다. 억지와 거짓말, 적반하장, 후안무치가 정의와 상식을 대신하는 천박한 사회가 가는 곳은 어디인지,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김정은의 눈치 살피기에만 급급한 거짓 평화쇼의 끝은 어디인지도 가늠할 수가 없다. 소위 ‘대깨문’으로 불리는 극렬 친문세력 등 국내 정치에 번진 팬덤문화는 불확실성을 넘어 헤어날 수 없는 늪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아니라 무엇보다 상식이 통해야 한다. 잘못이 들통 나면 부끄러운 척이라도 해야 하고, 억지나 파렴치도 정도껏 해야 한다. 철면피 후안무치가 오히려 큰소리치는 무법천지가 되어서는 확실성을 보장할 데가 어디에도 없어진다. 합리와 불합리, 정상과 비정상이 구별되지 않는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어떻게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겠는가. 역사는, 극도의 분열과 혼란을 조장하여 나라를 불확실성의 나락으로 몰고 간 것을 이 정권이 국민들에게 끼친 가장 큰 해악으로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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