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스캔들
해바라기 스캔들
  • 등록일 2020.11.11 20:06
  • 게재일 2020.1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인 이상 시종일관 이성적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더러 흔히 이성적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늘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보기보다 허술하고 허당끼 많은 존재이지요. 이성이란 갑옷으로 아무리 무장을 해도 부지불식간에 감정이란 빨간 내복이 삐져나오기 마련입니다.

짐승은 본능에 충실하고, 괴물은 본능을 관장합니다. 그러면 그 중간인 인간은? 본능을 억제하는 순간적 능력을 발휘하는 동물일 뿐이지요. 짐승은 번민의 정도가 인간만큼 드러나지 않고, 괴물은 타자로 하여금 번민을 유발하는 존재이지요. 그 도발된 번민에서 자유롭지 못한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지요. 성경에 묘사된 하느님조차도 온전한 이성으로 세상과 인간을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절대자답게 당신 기준으로 세상 피조물들의 생사를 관장했습니다. 그 기준이란 것은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완벽히 이성적인 것은 아니었지요. 말하자면 당신 닮은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한 당신의 말씀은 너무 인간적이고 온당한 것이지요.

어떤 판단을 할 때 이성이 꼭 감정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말하기 위해 이렇게 빙빙 돌아왔네요.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흔히 ‘감정 섞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이성이 항상 실천적 행동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이성적 판단은 결국 감정을 덜 섞는 타협으로 나타날 뿐, 이성 그 자체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착각합니다. 나는 감정적이지 않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고 있다고.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부분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뿐입니다. 행불행을 관장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단어, 감정!

둘만 되어도 이성적 판단 앞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안전한 거리 확보 없는 관계는 파국에 이르기 쉽습니다. 평화를 가장한 전쟁, 미소로 위장한 침울, 침묵으로 포장한 폭발이 당신 곁에 맴돈다면 이는 틀림없이 적당한 거리의 법칙이 무시 된 채 감정에 휩싸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정 동물인 인간관계의 법칙에 가장 적절한 예가 예술가들일 것입니다. 예민한 예술혼이라는 짐을 진 대신 ‘제멋대로’라는 면죄부를 얻은 그들의 관계는 더 쉽게 깨지고, 그 파국 또한 처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렸습니다. 고갱도 해바라기를 그렸지요. 고흐의 해바라기는 심연을 후벼 파는 듯 격정적이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자유분방한 듯 자신만만합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맘먹고 검색이라도 해봐야 아는 이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고흐의 해바라기가 더 아름답고 예술적이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덜 아름답고 덜 미학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해바라기로 대표되는 두 예술혼의 방식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지요.

고흐는 자신의 예술욕을 채우기 위해 고갱을 아를르로 불러들였습니다. 도도하고 지적이고 권위적인 고갱에 비해 고흐는 격정적이고 소박하고 성실했습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의 매뉴얼을 담당하는 건 인지상정이지요. 둘 사이의 권좌 차지인 고갱은 소박한 의자에 앉아 집착하고 매달리는 고흐가 성가실 뿐이었습니다. 참을 수 없었던 고흐는 광기를 핑계로 자신의 귀를 세상을 향한 격정처럼 고수레하고 말았지요. 그렇게 해야만 상처받은 영혼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터였으니까요.

김살로메소설가
김살로메소설가

고흐의 해바라기는 예술혼의 결정체입니다. 고갱의 해바라기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너무 다른 자신만의 해바라기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 둘은 만나지 않은 게 더 나을 것이었어요. 하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요. 각각 신경강박증과 오만방자가 없었더라면 누가 그들이 남긴 해바라기 은유에 대해 이토록 오래도록 기억해줄까요.

두 사람의 파국에 책임의 추를 견줘 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고결한 고흐의 신화도 고집불통이었던 고갱의 전설도 감정에 충실한 개성 덕분이었지요. 그 감정선 덕에 그들의 예술혼이 빛날 수 있었으니까요. 자기 연민으로 견뎌내는 고통도 자기 격정으로 발산하는 오만도 예술가에게는 모두 필요한 덕목일 테니까요. 그러하니 오늘밤도 몇 번씩 제 귀를 면도날로 오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당신, 당신이야말로 해바라기 품는 예술가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꿈의 원천은 용서할 만한 이성이 아니라 달떠도 좋을 감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까요. 격정의 드라마 없는 예술혼이 가당키나 할까요. 누군가의 예술혼, 그 출발점은 황금별 송이마다 촘촘 박힌 해바라기 씨앗 같은 감정 하나하나였음을 되새기는 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