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서명한 불공정 계약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서명한 불공정 계약서
  • 등록일 2020.11.09 19:56
  • 게재일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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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동방박사의 경배’. /우피치 박물관 소장

다방면에 탁월한 학식을 겸비한 인물을 ‘만능인’이라 일컫는다.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기술에 편중되지 않고,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한 지성인, 요즘 말로 ‘통섭형 인간’을 가리킨다. 문화사적으로 볼 때 특히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때 이런 유형의 천재들이 대거 출현했기 때문에 ‘르네상스형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많은 천재들이 피렌체에서 출몰했지만 르네상스의 만능인하면 곧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가 대표적이다.

레오나르도는 1452년 공증인 세르 피에로의 사생아로 태어나 열 네 살 되던 해 피렌체에서 명망 높던 미술가 베로키오의 공방으로 보내져 십년 동안 도제생활을 했다. 레오나르도는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보티첼리, 훗날 미켈란젤로의 스승이 된 기를란다이요 그리고 라파엘로에게 그림을 가르친 페루지노 등 르네상스를 이끌어갈 가장 재능 있는 미술가 후보생들과 함께 도제 생활을 했다.

스무 살 되던 1472년 레오나르도는 피렌체 미술가 조합에 이름을 올리며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출중한 그림 실력뿐만 아니라 명민함으로 인간과 자연을 통찰한 레오나르도였지만 직업의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화가로서의 명성을 만방에 알릴 걸작은 고사하고 입에 풀칠하기에 급급한 궁핍함에 쪼들린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흐른 1481년 산 도나토 수도원에서 제단화 한 점을 의뢰해 왔다. 그런데 작품 제작을 위해 수도원과 레오나르도가 맺은 계약 내용이 결코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계약서에는 미술가와 의뢰자의 책임과 의무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예컨대 작품 제작비용과 지불 방법 그리고 기한, 계약 파기 시 책임소재 등과 같은 내용이 계약서에 언급이 된다. 더불어 작품의 품질 보증에 대한 언급도 중요한 부분인데, 제작 공정에 대한 철저한 관리는 물론, 단가 절감을 위한 속임수를 막기 위해 엄선된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도 빠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도나토 수도원과 레오나르도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에는 이 같은 일반적인 사항들이 언급되는 대신 미술가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들만 나열돼 있다.

작품 대금을 현찰로 지급하는 대신 수도원이 소유한 땅의 일부분을 주겠다는 내용이나 30개월 내에 작품을 완성해야하며 이를 어길 경우 작품을 몰수하겠다는 등 화가의 책임과 의무만 기록돼 있다. 불공정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는 것은 레오나르도의 형편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것과 제대로 된 작품을 그려보겠다는 의지가 절실했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수도원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계약 내용과는 별개로 나뭇단과 큰 장작 한 짐 그리고 밀가루 13ℓ와 적포도주 한 통이 화가에게 지급됐다. 레오나르도의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는 이미 정평이 나 있던 터라, 또한 변덕스러운 성격 때문에 제단화 완성에 차질이 있을까 염려가 되었던지 수도원은 독려 차원에서 특별히 28피오리노를 입금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오나르도의 제단화는 미완으로 남겨졌다. 이 작품이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한 미완의 걸작 ‘동방박사의 경배’이다.

비록 미완으로 남긴 채 화가는 붓을 놓았지만 화가의 어느 작품 못지않은 탁월한 걸작 중에 걸작이다. 미술에 과학적 탐구 정신을 불어 넣은 레오나르도의 위대한 예술 정신이 전혀 부족함 없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완성작 보다 미완의 작업에 다른 다원의 고양된 예술 혼이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완벽한 상(像)은 관념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완성된 어떤 작품도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작품에 남겨진 미완의 흔적들은 감상자의 인식작용을 통해 보다 완벽에 가깝게 그려질 수 있다. 의도되었건 그렇지 않건 미술의 본질이 물질적 완성이 아니라, 완전한 아름다움에 다다르려는 예술정신에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김석모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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