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안 와도 괜찮아” 할아버진 웃으시지만…
“고향 안 와도 괜찮아” 할아버진 웃으시지만…
  • 손병현기자
  • 등록일 2020.09.28 19:27
  • 게재일 2020.09.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 추석 언택트 캠페인 따르면서도 마음 한곳엔 섭섭함도
일년 한 두 번 손자·손녀 보는 농촌 어르신들 아쉬움 갑절

“막상 아들들에게 올해 추석에는 고향에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마음 한편의 허전하고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니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고 맞은 첫 추석. ‘추석에 고향에 가지 않는 것이 선물이자 효도’라며 전국 기관 단체들이 ‘언택트 추석 캠페인’을 홍보하고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1년 중 두 번의 명절에서야 손자, 손녀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농촌 지역 어르신들은 내심 섭섭한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안동시 송현동의 박인순(73·여)씨는 “최근 서울에 있는 아들네들한테 코로나 때문에 내려오지 말라고 전했다”면서 “자주 보지 못하는 아들과 손자·손녀들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 허전하고 씁쓸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박 씨는 “가끔 전화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있지만, 명절이 지난 뒤 차례대로 주말마다 한 가족 단위 소규모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나마 박씨처럼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어르신들은 전화로 아들과 손자·손녀들의 얼굴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지만, 농촌 지역일수록 그렇지 못한 어르신이 더 많아 올 추석은 어느 해보다 더 쓸쓸할 것으로 보인다.

인천에 사는 이모(49)씨는 추석을 앞두고 고민이 생겼다. 안동에 사는 어머니가 최근 편찮아 이씨의 집 근처 병원에 입원하면서 차례를 지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장남인 이씨는 수십 년간 명절 때면 안동 어머니 집에 내려가 차례를 지내왔다. 하지만 올해는 어머니도 편찮고 가족들을 모두 인천으로 부르기도 부담돼 올해 추석엔 차례를 생략하기로 했다. 이씨는 “보통 명절에는 안동에 계신 어머니 댁에서 40여 명이 모여 차례를 지냈다”며 “올해는 어머니가 편찮아 인천에서 차례를 지낼까도 생각해봤지만, 행여 몸이 약해진 어머니가 코로나19에 노출될까 봐 그마저도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림프암 치료를 받았던 손녀를 위해 올해 처음으로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한 장모(63)씨는 “성묘도 차례도 모두 아픈 손녀와 며느리에게 부담이 될까 봐 이번 추석에는 지내지 않기로 했다”며 “조상님께서도 우리의 가족이 모두 건강하길 바라실 것”이라고 말했다.

추석을 앞두고 이씨와 정씨와 같은 고민과 부담감을 가진 이들이 많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엔 ‘코로나19 상황에서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는 데 차례를 꼭 지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종종 올라온다.

평소라면 집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병문안을 갈 수 있겠지만, 요즘엔 안 찾아가는 게 배려다. 특히 팬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 상황에선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을수록 더욱더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게 방역 전문가들의 메시지다. 명절 모임이나 차례 때는 여러 사람이 실내에 모여 마스크를 벗어둔 채 대화하고 식사한다. 감염에 가장 취약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선조들은 전염병이 돌거나 집에 환자가 있으면 차례와 제사도 생략한 때도 있다.

실제 제사와 차례를 중시하던 조상들도 전염병이 돌면 명절 모임과 행사를 중단했다. 조상들이 쓴 일지나 기록에선 위급한 시국에 차례와 기제사를 건너뛰었다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학국국학진흥원이 소장 일기자료 가운데 ‘역병이 유행하는 탓에 설과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생략했다’는 내용이 담긴 일기를 공개했다.

경북 예천에 살던 초간 권문해는 ‘초간일기’(1582년 2월 15일자)에서 “역병이 번지기 시작해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했다”며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들께 송구스럽다고 했다. 이틀 뒤 작성한 일기에는 “증손자가 홍역에 걸려 아파하기 시작했다”라는 내용이 실렸다. 안동 예안의 계암 김령은 ‘계암일록’(1609년 5월 5일자)에서 “역병 때문에 차례(단오)를 중단했다”고 했다. 앞서 5월 1일 그의 일기에는 “홍역이 아주 가까운 곳까지 퍼졌다”라는 내용이 있다. 안동 하회마을 류의목은 ‘하와일록’(1798년 8월 14일자)에서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코로나19는 조선시대 홍역과 천연두에 비할 수 없을 만큼 파괴력이 강한 전염병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하루속히 되찾기 위해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과감하게 추석 차례를 포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병현기자why@kbmaeil.com


손병현기자님의 최신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