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너머 ‘철수’가 보인다
‘종전’ 너머 ‘철수’가 보인다
  • 등록일 2020.09.27 19:17
  • 게재일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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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유엔연설에서 세계를 향해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국제지지를 호소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의한 우리 공무원의 피격화형 사건으로 궁지에 몰렸다. 화상 연설형식으로 이뤄진 유엔연설 이전에 의문의 실종사건으로 사라진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북한군이 저격 살해된 뒤 끔찍하게도 기름에 불태워진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공무원 피격사건 때문에 분노하는 여론에 묻혀 있지만,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지지 호소는 매우 심각한 논쟁거리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화상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믿는다”면서 “종전선언을 통해 화해와 번영의 시대로 전진할 수 있도록 유엔과 국제사회도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유엔연설 출발점은 지난 6월 15일 더불어민주당·열린민주당·정의당 등 범여권 의원 173명이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국회에 발의한 ‘한반도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일 것이다.

연설문 작성과정에서 ‘종전선언’에 대한 청와대 참모들의 일부 이견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최종결심했다는 후문도 들려왔다. ‘종전선언’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군철수’ 주장의 빌미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그게 아니어도 걸핏하면 ‘미군철수’를 부르대는 반미분자들의 목소리가 그악해질 게 뻔하다. 전쟁이 끝났는데 미군이 이 나라에 남아 있을 이유가 뭐냐는 논리는 어리석은 민심을 파고들기에 안성맞춤이다.

주한미군·유엔군·한미연합사 사령관을 겸했던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종전선언의 전제조건으로 “비무장지대 북쪽에 배치돼 서울과 남한의 북쪽 지역 도시들을 위협하는 북한의 대포와 미사일 역량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벨 전 사령관은 “해당 조건이 완전히 이행될 때까지 종전선언을 절대 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종전선언→유엔사 해체→주한미군 철수는 북한이 노리는 긴 세월 불변의 적화통일 도식이다. 그 사실을 모를 턱이 없는 여권이 이런 불장난을 계속하는 것은 그 심중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북한의 비핵화→종전선언→평화협정’이란 항구적 평화체제 공식의 포기를 뜻한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위태롭다.

문재인 정권의 ‘종전선언’ 카드는 집권 내내 공을 들여온 대북정책이 꼬여서 도무지 매듭이 풀리지 않은 답답함에서 나온 고육지책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토라진 김정은을 돌려세워서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국면을 만들고 싶은 그 뜻을 오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북한의 선의에만 집착하는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현실성부터 떨어진다. 1970년대 이래 판문점 선언 전까지 우리는 북한과 총 655회 당국자 회담을 했고, 그 결과 7·4 남북공동 선언 등 총 245건의 성명·선언·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중 단 한 건도 제대로 이행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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