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림동과 동해면 사이, 쓸쓸하고 한적한 시골에서의 청춘
청림동과 동해면 사이, 쓸쓸하고 한적한 시골에서의 청춘
  • 홍성식기자
  • 등록일 2020.09.24 19:47
  • 게재일 2020.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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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 소설가 황석영과 도구해수욕장을 떠올리다(상)

한때 파월장병 훈련소가 있었던 도구해수욕장. 지금은 관광객들이 조개를 잡는 평범한 해변이 됐다.
한때 파월장병 훈련소가 있었던 도구해수욕장. 지금은 관광객들이 조개를 잡는 평범한 해변이 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긴 장마, 수차례 태풍까지 겹쳐 올해 경북 바닷가는 어둡고 쓸쓸했다. 흔적 없이 꼬리를 감춘 여름. 아쉬움에 포항 동해면을 찾았다. 그곳은 소설 ‘몰개월의 새’가 잉태된 공간. 그 해변이 내년엔 다시 피서객들의 환한 웃음으로 북적이길 기대하며, 반세기 전 황석영이 겪었던 도구해수욕장의 여름을 떠올려 보았다. 이러한 감상이 낳은 결과물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황석영의 소설 ‘몰개월의 새’가 된 포항 외곽 마을

1960년대 파월병 훈련소가 자리했던 ‘도구 바닷가’

야트막한 건물·좁은 골목 연속된 시골마을 ‘몰개월’

병사들 떠나기 전 들렀던 술집 등 지금도 그 자리에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소설가 최인훈(1936~2018)은 한국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 중 하나인 ‘광장’의 서문을 통해 이렇게 일갈했다.

여기서 쓰인 ‘광장’과 ‘밀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틀 속에 끼워 넣으려는 평론가들이 있었고, 또 다른 학자들은 개인적 고뇌와 집단적 성취욕구로 이 두 단어에 접근하고자 했다.

최인훈보다는 몇 해 뒤에 태어난 소설가 황석영(77)은 최인훈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념과 전쟁, 개인과 집단에 접근했던 리얼리스트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며 그는 ‘한국 사실주의문학의 제왕’으로 자리 잡았다. 자타공인이었고, 재론의 여지도 없다. ‘자본주의의 그늘’과 ‘베트남전쟁이 야기한 비극’ ‘몰락일로를 걷는 공동체의 비애’를 황석영 만큼 탁월하게 소설 속에 형상화시킨 동시대의 다른 작가가 있는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최인훈이 밀실과 광장을 키워드로 독자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을 찍었다면, 많은 이들이 황석영의 수작(秀作)으로 지목하는 단편 ‘몰개월의 새’는 ‘골목안 창가(娼家)’와 ‘국경 너머로 확장하는 전장(戰場)’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읽는 이들을 서늘하고 형상 또렷한 슬픈 자각에 이르게 했다.



▲한때 베트남으로 갈 군인들의 훈련지였던 ‘그곳’



오래전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황석영이 술회한 바 ‘몰개월의 새’는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76년 ‘세계의문학’에 발표됐던 작품이다. 당시 저자 황석영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본다.



“몰개월은 해병 제1상륙사단이 주둔해 있던 포항 외곽의 작은 동네였다. 내 기억에는 사단의 북문과 서문 사이 어디쯤에 있던 쓸쓸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얼마 전에 지나다 보니 그곳은 포항제철이 들어서 있는데다 너무 변해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정글전 특수교육대며 몰개월의 술집 등은 당시에 모두 실존했던 곳들이었고, 여기 나오는 추장(소설 속 주인공의 동료병사)이라는 친구도 실제 인물이다. 그는 전라북도가 고향이었는데 1968년 12월인가 꽝응아이성 ‘바탕간 작전’에서 야간 매복을 나갔다가 부비트랩에 걸려 폭사했다. 분대원들이 사지가 찢긴 그의 시신을 군용 우의에 싸가지고 중대 방어진지로 돌아온 것을 목격했었다. 갈매기집도 그때 몰개월에 있던 술집의 하나였고, 미자인지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비슷한 여자가 있었다. 그리고 병사들이 떠나던 새벽에 그녀들이 나와서 손을 흔들던 장면도 모두 있었던 일들이었다.”



1960년대 파월장병들을 훈련시켜 머나먼 이국의 전쟁터로 떠나보내던 공간인 ‘몰개월’은 경북 포항시 남구 청림동과 동해면 도구해수욕장 사이 어디쯤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흔을 넘긴 포항 본토박이들은 이곳이 ‘우물재’라는 이름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케케묵은 고릿적 소설로 오해될 수도 있는 황석영의 ‘몰개월의 새’를 다시 펴드는 것은 웃음은 물론 눈물까지 함께 했던 그(주인공 ‘나’)와 그녀(빠꿈이란 별명의 작부 ‘미자’)의 공동체인 ‘골목’이 어떤 과정을 통해 와해됐으며, 무엇을 통해 복원될 수 있는지를 살피는 행위다.

또한 대비되는 두 공간(몰개월과 베트남 정글)이 이름을 달리해 현재도 엄존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에 다름없다. 소설의 서두는 베트남 파병을 목전에 둔 주인공 한 상병이 유년과 청춘을 보낸 서울의 ‘골목’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의 ‘골목’은 어떤 이유로 사라졌는가?



“일 년 반만에 서울을 찾아가 다시 확인했던 것은 나의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파충류의 허물과도 같은 것이고, 나는 그 허물을 주워서 다시 뒤집어쓰고 돌아온 건 아닌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싸돌아다니던 골목에는 아직도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다. 나도 언제나 끼이고 싶어 하던. 머리 좋은 치들의 비밀결사는 여전히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성공한 신사들 같았다. 모친의 식료품 가게는 문을 닫았다. 그 어두운 가게의 천장 위에 내 ‘잠수함’은 뚜껑을 닫고 선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뚜껑을 젖히고 머리를 내밀자 나는 다시 심해에 잠기는 것 같았다. 내 다락방의 벽에는 떠나오던 날의 낙서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지붕 건너편에서 솜틀집의 활차 돌아가는 소리가 여전히 들렸고,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발소 집 형제는 유행가를 합창하고, 야채장수 부부는 또 한바탕 두들기고 울었다.”



‘골목’에서 성장한 소년이 청년이 되고 그 청년이 또 다른 ‘골목’인 몰개월에 이르러 이제는 ‘골목 바깥’으로 내팽개쳐질 운명이 됐다.

온전한 형상이라 믿고 살았던 공동체가 붕괴하는 모습을 힘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는 20대 젊은이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골목’에 대한 집착과 같은 아픔을 앓는 골목 안 인간들에 대한 연민은 무한대로 증폭한다. 한 상병에게 그 집착과 연민은 가진 돈 전부를 몰개월의 창녀 빠꿈이(미자)에게 털어주는 형태로 나타난다.



추장이 말했다.

“뭐하니... 몰개월 나가자.”

“잠이나 자야겠어.”

“헛... 야, 너 미쳤구나. 다섯 시에 출동이야. 지금 벌써 한시 가까이 되었다. 마지막인데 잠이 오냐?”

“졸려.”

“돈 아까워서 그러니? 이제부턴 휴지나 다름없는데 뭐할래...”

“몸이 불편해.”

“인마, 술 먹으면 다 나을 병이야. 갈매기집 빠꿈이가 오매불망 기다린다.”

“조용히 누워 있을라구 그래. 갔다 와. 그리고, 이거 갖다줘라. 탁 털은 거야.”

“외상값이냐?”

“휴지나 마찬가지잖아.”

“빠꿈이 수지 맞았는 걸.”

 

도구해수욕장 인근에 위치한 몰개월 비행기공원. /경북매일DB
도구해수욕장 인근에 위치한 몰개월 비행기공원. /경북매일DB


▲44년 전 몰개월, 그 바닷가에선…



주인공 나(한 상병)는 어디에서 미자를 처음 만났을까? ‘골목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강제한 전쟁에 ‘골목 안’ 사람들이 끌려가 죽는 아이러니가 반복되던 1960년대와 1970년대.

당시 포항 외곽 바닷가마을엔 ‘무너지는 골목공동체’를 은유하는 공간이 존재했다. 바로 ‘몰개월’이다. 황석영은 그곳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는 철조망을 무사히 통과했다. 개구리 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논두렁을 지나면 한길이 나오게 되어 있었다.

“불빛 보이니?”

“응. 몰개월이다.”

몰개월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특교대가 생겨나자 서너 채의 초가가 있던 외진 곳에 하나둘씩 주막이 들어섰는데, 거의가 슬레이트 지붕에 흙벽돌이나 블록으로 지은 바라크들이었다. 비슷한 꼴의 나지막한 집 이십여 채가 울퉁불퉁한 자갈길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이곳을 모두 몰개월이라 불렀는데 바다가 바로 그 뒤편에서 철썩이고 있었다.



지금도 포항시 청림동과 동해면은 좁은 골목이 야트막한 건물들을 거느리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불을 밝힌 골목 안에선 44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삶이 간당간당 이어진다. 외형은 상전벽해로 보일 수 있지만, 간난신고(艱難辛苦)로 이어지는 가난한 자들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지난 세기 빈한한 가정의 딸로 태어나 온갖 고생을 겪다가 결국엔 삶의 마지막 진창으로 머리채 잡혀 끌려온 몰개월의 ‘작부’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축복받지 못한 출생과 거친 삶의 이력 탓에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잃었던 것일까? 천만에다. 몰개월의 창가 중 한 곳에 기생했던 포주(抱主)가 입을 열어 ‘골목 안’ 그녀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쓸개 빠진 년들이 모두들 애인 하나씩 골라서는 편지질을 하는데, 어떤 애들은 열 사람 스무 사람에게 쓴다우. 한 달에 한명씩 골라잡아두 열 달이면 열 명이 꽉 찬다구. 미자년이나 옆집 애란이나 가끔 술 처먹구 지랄을 하는데, 아마 상대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는 모양이지. 제대하구 가면서 몰개월에 찾아와 들여다보는 놈들은 한 번도 못 봤는데두….”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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