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포항이 국제 항만도시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적 시각을 갖춘 전문가의 양성과 다국어 구사가 가능한 환동해권의 청년 교포들을 유인, 수용하여 즉시 활용 가능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 선결과제라는 지적이다.

이제야 포항이 국제 항만도시라고 하는 말에 조금은 고개를 끄덕일 만 해졌다. 한 나라나 지역이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이려면 반드시 출입구를 가져야만 한다. 하늘길을 이용하는 공항이든, 육로를 이용하는 국경이든 내국인과 외국인이 접점을 가지고 드나들 수 있는 곳 말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와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창구를 가지지 못하면 그 나라나 지역이 국제사회에서 이름을 알리거나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는 북한을 마주하고 있어 여느 내륙 국가처럼 국경을 접점으로 하는 국제관문은 사실상 막혀있다. 지금 외국과 국제무역을 활발하게 하거나 내국인의 해외여행과 외국인의 국내 관광이 가능한 것은 국제공항과 국제항만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은 국제항만을 가지고 있다. 3개 항으로 이루어진 포항항 가운데 신항은 국제벌크항만, 영일만항은 국제컨테이너항만이다. 이번에 완공된 국제 크루즈 여객부두로 인해 포항항은 국제 벌크화물과 국제 컨테이너 화물 그리고 국제여객 모두 다루는 완전체의 국제항만으로 재탄생하였다. 명실공히 국제 항만도시 포항이라는 자격증이 이제야 완비된 셈이다. 여기에 하늘길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특별전세기를 통해 세계 어디라도 움직일 수 있다. 실제 외국을 오간 사례도 있다. 이번에 포항을 모항으로 삼고 러시아와 일본 서해안지역을 오가는 국제 카페리호가 취항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이를 통해 포항의 국제화물과 국제여객이 넘나들며 항만물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동시 부진에 빠지면서 국제물동량도 자연 격감하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그동안 높은 성장세를 보여왔던 국제크루즈산업의 피해는 매우 컸다. 국제해운업계가 이처럼 심각한 불경기를 맞이하면서 상위권의 국제여객선사들까지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중고여객선의 가격은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포항의 국제 크루즈 여객부두가 완공된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앞으로는 전망이 밝다고 단언할 만한 확신도 없다. 주식투자가라면 누구나 발가락 끝에서 사서 머리카락 끝에서 팔아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워낙 시장 상황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현명한 투자가들은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라고 조언한다. 국제정치, 국제경제의 역학관계도 주식시장만큼이나 한 치 앞을 모를 정도로 빠르게 변화한다. 국제 해운업계가 지금 불황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언제 회복세를 보여 급반등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계 무역이 차단되어 국제물동량이 바닥을 보이고 국제해운업계가 불황의 늪에 빠진 상태에서 국제 카페리 노선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모험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일본을 오가는 여객과 화물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카페리의 유용성을 고려하면 지금이 무릎 단계인 최적의 타이밍일 수도 있다. 국제 해운업계가 어려운 만큼 포항발 국제카페리 노선의 시장진입 허들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항만, 공항, 철도 등 인프라 투자는 불경기에 추진할수록 비용 대비 성과가 높아진다는 특징을 지닌다. 불황기에 각국이 인프라 투자에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포항항이 국제 항만도시에 어울리는 적합한 기능을 발휘하여 도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2개의 교육기반만은 서둘렀으면 한다.

첫 번째 과제는 포항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기반하여 주변 국가와의 경제적 문제를 전략적으로 접근 가능한 지경학(地經學·geoeconomics) 지식을 갖춘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다. 국제관계는 과거와 달리 정치, 경제, 외교 등 어느 특정 분야만 다루지 않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외교부를 외교통상부로 개편한 것도 이와 같은 지경학에 기반한 국가전략의 흐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분쟁을 군사 행동이라는 물리적 수단으로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정치적 문제나 전략을 기반으로 경제적 수단을 이용하는 국가전략이 일반화되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다양한 경제적 제재 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지경학적 전략에 기반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학, 정치학, 지리학이 통합된 학문인 지경학은 그동안 경제외교를 지탱해왔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수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경학인 셈이다. 포항이 앞으로 국제 항만도시로서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생존하려면 폭넓은 시야와 통찰력을 갖출 수 있는 지경학적 소양을 지닌 젊은 인재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아닌 포항지역에 특화된 지경학적 지식을 갖춘 인재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포항의 대학 내에 지경학과를 신설하거나 단일 교양과목의 형태라도 개설하여 국제정치 경제적 감각이 배인 청년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반을 서둘러 구축해 나갈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과제는 국제 항만도시 포항의 주요 분야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다국어가 가능한 외국 청년인재의 유인과 수용을 위한 기반 마련이다. 일종의 교육프로그램이라 해도 무방하다. 포항항이 환동해 거점항만으로 지정된 것은 포항이 지닌 지정학적 위상 때문이다. 포항은 국제컨테이너부두, 국제벌크화물부두, 국제여객부두 모두를 갖춘 동해안 유일의 국제항만도시다. 바다를 격해 중국만 상대하는 서해안의 국제항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포항은 울릉도 독도라는 동해안 최동단의 국경 도서를 끌어안으면서 위로는 북한,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 극동연방 관구를 두고 있다. 우로는 일본의 서해안지역을 상대하며 남으로는 미국, 동남아까지 연결된다. 환동해 내지 환울릉지역을 아우르는 포항은 태생부터 다국적을 상대하는 국제 항만도시인 셈이다. 이러한 전략적 위상을 지닌 항만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포항시가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가에 따라 포항이 지닌 지정학적 장점을 살려 경제적으로도 유의미한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이 문제는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다. 포항 스스로 환동해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어야만 한다. 러시아, 일본, 중국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교포 2세들을 선점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해 포항국제아카데미(가칭)와 같은 교육프로그램의 개설을 제안한다. 학력 인정까지는 불필요하다. 그저 우수한 청년 교포들을 끌어들여 포항에 정착시키고 해양으로 나아갈 포항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포항은 앞으로 포항항을 거점으로 러시아, 중국, 일본 등 환동해권으로 경제영토를 확장해 나가야만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금 당장 포항에 필요한 교육기반은 앞서 언급한 딱 2개의 교육기반뿐이다. 국제적 감각을 지니면서 포항의 미래전략을 세울 청년 인재의 양성, 즉시 활용 가능한 환동해권 4개국 언어에 능통한 외국 국적 청년 교포를 산업인력으로 유인, 수용할 그릇이다. 포항의 인재는 자체적으로 수급해야만 한다. 다가올 환동해경제권 시대에 포항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포항을 등에 지고 활약할 청년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의 구상은 단지 졸업 후 포항을 떠날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한 국제학교의 설립 문제보다 더 시급한 최우선 과제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 김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