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br /><br />시조시인<br /><br />
김병래

시조시인
 

여름 들녘에 개망초꽃이 지천이다. 누가 뭐래도 여름은 개망초꽃의 계절이다. 아무도 개망초꽃을 피해서 여름을 건너갈 수는 없다. 이 땅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고 우리의 정서에도 잘 맞는 것 같지만, 개망초는 사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라 한다. 그 시기도 구한말쯤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마치 서양문물이 그렇듯 지금은 한반도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번성한 풀이다.

개망초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망초란 풀이 따로 있다. 망초도 개망초 못지않게 흔한 풀지만 좁쌀처럼 자잘한 꽃이 눈에 잘 띄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통은 이름에 ‘개’자가 들어가면 급이 좀 낮은 걸로 치지만 개망초꽃은 예외다. 망초나 개망초의 이름에 망(亡)자가 들어간 력에는 귀화해서 한반도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시기가 일제의 식민통치 시기와 겹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꽃이란 원망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후에 우리나라의 부흥과 함께 왕성한 번식력으로 널리 퍼졌으니 이제는 망초가 아니라 흥초로 불러도 되겠다.

개망초꽃은 흔하디흔한 꽃이다. 지천(至賤)이란 말이 그렇듯 흔히들 흔한 것은 천한 것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도처에 널려 있으니 귀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착각이고 오류다. 세상에 가장 흔한 것이 공기지만 없으면 단 5분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이듯, 흔한 것이 값나가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값으로 따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 잊고 있는 것이다.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력이 왕성하다는 의미도 된다. 개망초는 옥토든 박토든 가리지 않고 최소한의 조건만 되면 싹을 틔워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기름진 땅에서는 무성하게 자라고 척박한 땅에서는 왜소하게 자라지만 환경이나 조건을 불평을 하거나 비관하는 기색이 없다. 소박한 꽃이지만 결코 초라하지는 않다. 크고 화려한 꽃들에 비교해서 조금도 기가 죽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다. 흔해빠진 들꽃이라고 자기비하를 하거나 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우울해하는 건 사람들에게나 있는 일이다. 물론 개망초란 불명예스러운 이름 따위도 전혀 개의치를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 개망초꽃을 닮았으면 좋겠다. 저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탐욕과 위선과 비겁과 사악함이 없이 진실하고 소탈했으면 좋겠다. 세상에 하나라도 무의미한 사물이 있을까마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것들에게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공부도 좋고 몸의 건강을 위한 노력도 좋지만 시시각각 전개되는 대자연의 현상에서 삶의 에너지와 지혜를 얻는 일이 무엇보다 기본이라는 생각이다.

내일이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지 75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룩한 것은 분명 온 국민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축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