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러시아에서 엥겔스를 떠올리다

네바강에 도열한 군함을 구경하기 위해 강변을 찾은 사람들.

◇ 네바 강에서 펼쳐지는 러시아 해군의 관함식

상트 페트르부르크 거리마다 군인들로 넘쳤다. 한눈에 봐도 해군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특이한 건 러시아 해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군인들도 많았는데, 이렇게 해군들이 많은 이유를 함께 방을 쓰는 친구가 알려주었다. 매년 7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러시아 해군 창설 기념 관함식과 축제를 하기 때문에 러시아 해군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우호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 군인들도 많은 거라고. 겨울 궁전이 바로 보이는 네바 강변에는 여러 척의 군함과 잠수함까지 도열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평일부터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북적였다. 지금 이 시기가 어쩌면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가장 붐비는 시기일지도, 금요일이 되자 빈 침대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8개의 침대 중 4개는 한 가족이 차지했는데 제대로 휴가를 즐기는 듯 저녁이 되면 그날 쇼핑한 것을 펼쳐놓고 정리하며 즐거워했다. 그들이 온 곳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3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첼랴빈스크였다.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우파로 올 때 머물지 않고 그냥 스쳐왔던 곳이다. 이렇게 온 가족이 휴가를 떠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 것이다. ‘국내여행’이지만 거리로 치면 국내여행이라 할 수가 없다. 러시아 해군 창설일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왔는데 자기들은 이 날짜에 맞추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고, 나에겐 운이 좋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딱히 이런 무기들을 늘어놓은 행사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저 무심히 구경할 뿐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마지막 날, 일요일 밤엔 내내 네바 강과 전함들을 밝히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사람들의 함성이 이어졌다.

 

거리를 걷다 마주한 엥겔스의 동상. 톨스토이 국립 박물관 근처에 있다.
거리를 걷다 마주한 엥겔스의 동상. 톨스토이 국립 박물관 근처에 있다.

러시아는 오랜 세월 유럽으로 진출하기 위한 부동항을 확보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태평양으로 나아가기 위해 제정 러시아 시대에 블라디보스토크를 태평양 함대의 군항으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다. 과거 표토르 대제가 발트해에 접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옮긴 것도, 현재 러시아 본토에서 동떨어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국경을 거쳐 가야하는 항구도시 칼리닌그라드를 포기하지 않고 발틱함대 사령부를 두고 있는 것은 어떻게든 유럽을 견제하고 바다로 나가는 길을 열어 놓기 위함이다. 아무리 넓은 영토를 가졌어도 바닷길을 포기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로선 바닷길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발틱 함대는 태평양 함대와 흑해 함대에 비해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수도 모스크바와 가장 가깝고 가장 많은 물류가 오가는 유럽 항로를 지켜야 하니 임무가 가장 막중하다.

 

아르바뜨 거리에서 마주친 헌책 노점.
아르바뜨 거리에서 마주친 헌책 노점.

◇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오는 길에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아직 공사구간인 곳을 제외하고 아주 여유롭게 모스크바로 들어올 수 있었다. 약 800킬로미터 거리인데 만약 일반 도로로 달렸으면 예정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속도로로 달렸음에도 쉬는 시간을 포함해 12시간이 걸렸다. 쉬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였는데도 모스크바 시내에 들어와 정체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른 나라에 와서 고속도로를 달리면 왜 우리나라는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통행을 막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세계에서 오토바이가 고속도로를 달릴 수 없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정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는 한국이 유일하다. 배기량이 낮은 오토바이의 경우 통행을 제한하는 경우는 있어도 지금까지 여행한 국가 중에서 고속도로를 달리지 못한 나라는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자동차 전용도로도 오토바이를 달릴 수 없게 만들어 ‘통행의 자유’를 제한한다. 오토바이와 오토바이 운전자에 대한 차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이렇게 고속도로를 달리다 다시 돌아가 차별 받을 걸 생각하면 참으로 아쉽다. 오토바이가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건 차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오히려 가해의 위험은 자동차가 더 크다. 오토바이든 자동차든 단지 이동의 도구일 뿐 모든 건 운전자에게 달린 것이라 생각한다.

 

톨스토이 국립박물관 후원에 서 있는 톨스토이 동상.
톨스토이 국립박물관 후원에 서 있는 톨스토이 동상.

모스크바부턴 이제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모스크바에 며칠 머무르는 동안 K 선생님 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K 선생님은 동향인데 모스크바에서 민박과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 편안하게 지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K선생님의 민박집은 아르바뜨 거리와 가까워 관광하기도 편했다. 처음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는 시내와도 먼 곳에 숙소를 잡았고, 오토바이 부품을 구하느라 시간을 많이 쓴 탓에 제대로 시내 구경을 하지도 못했다. 이제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경험했던 길을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편안해졌다. 어떤 일이 생길지는 전혀 예상할 수는 없지만 처음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와는 다르게 조바심은 내려놓고 여유롭게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추위가 오기 전, 추석 전에 돌아가려면 무조건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트럭을 대고 바로 과일을 내려 파는 구역.
트럭을 대고 바로 과일을 내려 파는 구역.

◇ 골목길에서 만난 엥겔스

처음 모스크바에 왔을 때는 서점을 한 곳도 찾아보지 못했었다. 모스크바 대학 근처에 괜찮은 서점이 여럿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가보자 싶어 명소 위주로만 돌아다녔었다. 숙소 가까이 있는 돔 서점을 찾았다. 지하 1층, 지상 2층까지 규모가 큰 서점이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 교보문고 같은 느낌이었다. 카페도 있고 장난감, 문구부터 모든 분야의 책을 모두 구할 수 있는 서점이다. 내부 인테리어도 훌륭했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2층에 팔고 있는 미니북이 탐났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50년의 역사를 가진(1967년 개점)만큼 책과 관련된 행사들도 자주 열리는 듯했다. 서점을 나와 아르바뜨 거리 남쪽에 있는 톨스토이 국립 박물관과 푸쉬킨 기념관을 찾아 골목길을 걸었다. 아르바뜨 거리에 있는 헌책 노점은 책을 찾는 손님의 거의 없었다.

아르바뜨 거리 남쪽에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흩어져 있다. 이리저리 골목길을 헤매다 톨스토이 국립 박물관 근처에서 엥겔스의 동상을 마주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평생 동지였으며,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는 동안 물심양면 도왔다. 산업혁명 이후 피폐해진 농촌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들어온 농민들은 노동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삶은 곤궁했다. 그는 독일 출신이었으나 아버지가 경영하고 있던 영국 맨체스터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자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은 부르주아 계급이었으나 사회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집안도 부유했고,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핍박받는 노동자의 삶을 기록하고 공산주의 이론을 정립하는데 평생을 보냈다. 노동자들의 혁명은 성공한 적이 있으나 이상적인 공산국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정밀한 이론도 인간의 욕망이란 변수 앞에선 꼼짝없이 길을 헤맬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푸드시티는 온갖 농산물이 모이는 거대한 시장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된 견과류.
푸드시티는 온갖 농산물이 모이는 거대한 시장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생산된 견과류.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 시 외곽에 있는 푸드시티에 다녀왔다. 러시아 전역에서 생산된 과일과 야채, 각종 농산품이 모이는 거대한 시장이다.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생산된 견과류가 굉장히 쌌다. 구역별로 나뉜 거대한 트럭 주차장이 그대로 시장이었다.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트럭 뒷문을 열어놓고 자신이 가지고 온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는 농민과 상인들의 에너지가 넘쳤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이 틀렸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자신이 살던 시대를 증명하는 가장 훌륭한 이론이었으나 세상은 하나의 이론으로 재단하고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당장 내일 닥칠 일도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이제 모스크바를 떠날 일만 남았다.    /조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