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배상 지지부진 상황서 지열발전소 시추기 철거 ‘초읽기’
터무니없이 헐값매각도 논란… “혈세 70억 날릴 동안 뭐했나”

“포항지열발전소의 시추기가 사라질 상황에 있습니다”

11·15일 포항지진을 촉발한 원인으로 지목됐던 포항지열발전소의 시추기 매각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지역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정부가 주도한 사업임에도 아직도 지진과 관련해 정부나 참여자의 공식적 사과도 없고 배상도 진행되지 않았는데, 포항지열발전소의 흔적부터 우선 처분하는게 적절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2일 다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포항지열발전소의 시추기 철거를 위한 외국인 기술자가 최근 국내로 입국했다. 이들 기술자는 코로나19 자가격리 지침에 따라 2주간 자가격리 중이며, 자가격리가 풀리는대로 시추기를 해체하는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매각은 지열발전소 양도담보권을 가진 신한캐피탈이 추진하고 있다. 이는 포항지열발전소 사업자인 넥스지오가 경영난으로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어 시설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말 열린 지열발전시설 점유이전 및 철거금지 가처분신청 사건 심문에서 신한캐피탈 측 대리인은 “시추기가 지하 지열정과 분리돼 있고 태스크포스에 참여한 외국인 교수가 철거해도 안전하다고 답변한 만큼 보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어 올해 2월 13일 지열발전소 설비 소유주인 신한캐피탈은 시추기 일체를 인도네시아 업체에 매각했다. 시추기는 본체를 포함해 총 9종의 부속물로 구성돼 있으며, 매각대금은 약 19억원(160만불)이다.

상황이 이렇자 포항시 등은 시추기 철거와 관련해 산업통산자원부와 신한캐피탈에 철거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청했으나 시추기를 포함한 시설의 철거 및 반출에 대해 법률적으로 강제할 방법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포항지진과 관련해 지역에서 꾸준한 활동을 해 오던 시민단체 및 관계자들은 허탈감을 내비치고 있다.

포항 11·15지진 지열발전공동연구단 양만재 부단장은 우선 헐값 매각이라는 지적을 했다.

그는 “지열발전소 건설을 위해 시추기를 중국에서 도입한 가격이 96억원이고 설치 부대 비용까지 투자된 금액은 104억원이나 된다. 이 중에서 68억여원이 정부 예산이다”며 “국민의 세금이 70억원 가까이 투자된 시추기가 19억여원의 헐값에 팔려나가도록 방치한 정부와 관계기관은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매각액을 떠나 정부 등 관계부처의 무관심 역시 큰 문제라는 입장이다.

양 부단장은 “포항지열발전소 운영 및 감독의 책임부서인 산업통상부와 한국에너지평가원이 무얼하고 있었나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면서 “감사원 감사 보고서에서도 시추기 구입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지적하고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항지역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포항지열발전소 시추기가 지진원인조사와 배보상 절차에 반드시 필요한 증거물인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고 보존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정되면 정부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등지에서 매입을 해 보존하는 등의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준혁기자 jhjeon@kbmaeil.com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