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노자 도덕경에‘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이 나온다. “빛(光)을 누그러뜨리고(和), 이 세상의 세속(塵)과 함께(同) 하라”는 뜻이다. 배우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생각과 결정만이 옳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자신의 똑똑한 광채를 줄이고 세속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옳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나의 광채를 줄여서 주변의 빛과 조화를 맞추라는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가정도, 기업도, 나라도 온전치 못할 것이란 경고가 담겼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범한 실책이다.

노 실장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도와 다르게 서울의 아파트를 남겨둔 채 청주의 아파트를 처분하는 것이 서울의 아파트를 지키려는 모습으로 비쳐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노 실장의 공언처럼 보유한 아파트 2채를 모두 매각하면 그는 무주택자가 된다. 다소 과하다싶은 대처였지만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노 실장이 아파트를 청주-반포 순으로 처분해 양도세 3억원 가량을 절감하게 됐다는 미래통합당의 따가운 분석이 나오면서다.

그가 만약 반포 아파트를 먼저 매각했다면 8억2천만원의 양도차익이 나오고, 이럴 경우 양도세 중과세율(42%+가산세)이 적용돼 4억원 가량의 양도세가 발생한다. 반면 청주아파트를 먼저 판 후 반포 아파트를 팔면 각종 세제 혜택으로 5천600만원의 양도세만 내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가뜩이나 서울 아파트값 폭등으로 사나워진 부동산 민심이 뒤집혔다. 누리꾼들은“이런저런 핑계로 잘도 빠져나간다. 내로남불 부끄럽지 않느냐” “양도 차액은 기부하라. 그게 진정한 뒤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의미” 라고 꼬집었다.

사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정부 초기부터 말도, 탈도 많았다. 20여차례에 걸쳐 “집값을 잡겠다”며 대책을 내놨지만 서울 아파트값은 천정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동산정책 입안에 관여한 고위공직자 상당수가 다주택자로 드러나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성 위기로 치달았다. 지난해 기준으로 청와대 참모진 중 10여명이 다주택자였고, 고위 공직자 750명 중 248명이 2가구 이상 주택자였다. 참여연대는 정부 부처뿐 아니라 부동산 관련 입법을 다루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 상당수도 다주택자라고 폭로했다. 실제로 이들 위원회 소속의원 56명 중 16명이 다주택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당인 민주당을 지지해 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민주당 내 다주택자 의원 42명과 일부 시세차익 내역을 공개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논어에서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가지인 데, 첫째는 먹고 사는 경제이고, 둘째는 스스로를 지키는 군대, 셋째는 백성들의 신뢰”라고 답했다. 공자는 그 중에서 백성들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공자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이 마음에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