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이요, 뻥”
“뻥이요, 뻥”
  • 등록일 2020.07.07 20:02
  • 게재일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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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지난 봄 조용한 죽음이 내 마음에 슬픔의 작은 여울을 만들었다.


2014년부터 서울 성북구의 몇 동네를 돌며 독거어르신들을 방문하여 쌀이나 필요물품들을 전해드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축복의 기도를 함께 드리는 나눔과 섬김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가 돌아보는 분들 중에 70대 후반의 할아버지가 계셨다.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은 냉골인 단칸방에서 자그마한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셨고 휴대용 가스렌지에 밥을 해서 신김치 하나로 식사를 하시던 분이었다. 젊었을 때는 뻥튀기 기계를 손수레에 싣고 서울 강북의 동네들을 돌아다니시면서 뻥튀기 장사를 하셨고, 나이가 들어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게 됐을 때는 튀겨진 뻥튀기과자를 팔러 다니셨다.

봉사자가 쌀 등을 드리고 잠시 이야기와 기도를 하고 돌아설 때면 할아버지는 어떤 때는 내 몸채만한 큰 비닐봉지째로 어떤 때는 한 상자 통째로 뻥튀기과자를 주시곤 했다. 아무리 받지 않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봉사하는 우리는 하릴없이 그 뻥튀기과자를 받아서 다른 독거어르신들에게 나눠 드렸다.

코로나19로 대면접촉이 제한돼 몇 달을 찾아뵙지 못하는 사이 그 분은 뻥튀기 기계와 과자를 싣고 다니던 녹이 슨 손수레만 골목길에 덩그마니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주검은 며칠이 지난 뒤에야 독거노인생활관리사에 의해 발견됐다. 자그마한 몸으로 한때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뻥뻥” 호령하며, 동네 주부들과 아이들에게 맛있는 주전부리를 제공하고 뻥 소리와 흰 연기의 즐거움을 나눠주던 뻥튀기 할아버지는 그렇게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갔다.

“뻥이요, 뻥!” 내 어린 시절 좁은 골목길 초입에 뻥튀기 아저씨가 들어서면 동네 아이들은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곡물이 기계 안에서 다 튀겨질 무렵 아저씨가 외치는 “뻥이요 뻥” 소리에 모두들 귀를 막고 있다가 투입구를 열 때 나오는 수증기 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터지는 시간을 미리 알려주니 아무리 큰 소리에도 기계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놀라지 않았다. 뻥튀기 기계는 곡물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것을 튀겨냈다. 물론 쌀, 옥수수알이 가장 흔한 재료였지만, 가끔은 검정콩에 떡국용 떡, 말린 누룽지도 튀겼다. 뻥튀기는 별다른 간식거리 과자가 별로 없었던 시절에 맛도 있고 양도 푸짐한, 그러나 배는 부르지 않은 훌륭한 주전부리였다. 차가 막힐 때 최고의 주전부리 중 2위가 뻥튀기였다는 2007년의 조사도 있다.

7월 8일 오늘은 1994년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날이다. 우리 쪽에서도 많이들 놀라기는 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봄 김일성 주석의 손자인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공식 활동이 전혀 보도되지 않자 김정은 사망설이 돌았다. 5월 1일에는 탈북자 출신의 어느 당 국회의원 당선인이 김정은 사망을 99% 확신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보란 듯이 김정은 위원장은 바로 북한 언론에 자신을 드러냈고, 사망설은 모두 헛소리가 됐다. 그런 말을 퍼뜨린 사람들은 ‘뻥쟁이’가 됐다.

“뻥이요, 뻥” 외침은 뻥튀기 아저씨가 곡물을 튀겨낼 때만 사람에게 이롭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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