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미경<br>동화작가
최미경
동화작가

열어둔 창으로 이른 아침의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선다. 희미하게 새소리가 들리고 나는 커피를 끓인다. 첫째 아이는 소파에 푹 파묻혀 어제 읽다 접어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뒤적이며 사랑에 대한 몽상에 빠져들고 있다. 거실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있던 둘째는 팔이 저린지 천장을 향해 바로 누워선 무언가 읊조리리는 듯 하다. 그러다 기억이 나질 않는지 머리 위에 올려진 A4용지를 끌어와 그 안에 적힌 김용택의 동시‘선생님도 울었다’를 다시 가만가만 읽어 내려간다. 첫째 발치 근처에 있던 셋째가 손에 들고 있던 트리나 폴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을 덮고 좌탁 앞에 앉아 길고 뚱뚱한 원을 스케치북에 그리고는 그 안을 노오랗게 채운다. 그 길고 뚱뚱하고 노오란 원은 줄무늬 애벌레가 만난 노랑 애벌레인 듯하다. 나는 한 손에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과 다른 한 손에는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을 들고 햇살이 내려앉은 1인용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리고 오롯이 탐독한다. 읽는다. 읽어낸다. 아, 책장이 소리 없이 넘어간다.

“엄마, 배고파.”

돌아보니 어제저녁 먹었던 짜장면 자국이 아직 입가에 남아 있는 둘째가 식탁을 닦고 있는 나를 흔들고 있었다. 그렇다. 그렇게 나의 상상놀이는 끝났다.

우리 집엔 괴테를 아는 첫째도 동시를 외우는 둘째도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셋째도 없다. 그리고 나를 위한 커피타임은 더욱 없다. 대신 눈만 뜨면 컴퓨터를 켜는 첫째와 눈 뜨고 있는 모든 순간 먹을 것을 찾는 둘째와 잠들기 전까지는 뭘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셋째가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미안함의 시간들을 사랑과 애정으로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보이지 않았던 것을 속속들이 지켜보게 되면서 미안한 마음은 분통 터지는 마음으로 변해 갔다. 조그만 일에도 목소리가 커지고 쉽게 짜증을 내는 나는 그런 엄마였다. 아니다, 나는 본래 일하는 엄마 그래서 늘 바쁜 엄마였다.

항상 아이들에게 고마웠고 언제나 아이들 편이었다. 그런 나의 엄마 가면이 벗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동안 내가 가꾸어왔던 엄마 가면에는 아이들이 바라봐주길 바라는 얼굴도 있고 남편이 나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얼굴도 있고 남자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라고 바라봐주길 바라는 사회적 얼굴도 있다. 그것뿐이겠는가. 알면서도 숨기거나 알지못하는 사이 포장 되었던 가면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 중 하나의 가면이 벗겨졌을 뿐인데 내 민낯에 내가 더 당혹스러웠다.

“엄마, 배고파.”

다시 돌아보니 셋째도 둘째 옆에 서서 나를 흔들고 있다. 그렇다. 나의 실전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라면 하나를 끓여내도 “엄마는 어떻게 라면도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라는 둘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마는 대체 못 하는 게 뭐야?”라고 덧붙이던 셋째, “엄마니까 이 모든 게 가능하지.”라고 마무리를 짓던 첫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집안전대책 엄마메뉴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