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와 겸손
검소와 겸손
  • 등록일 2020.02.25 20:14
  • 게재일 202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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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

몇 달 전의 일이다. 밀려드는 업무로 정신없어 한동안 못 나간 친목 모임에, 이번에는 새로운 얼굴도 있고 하니 꼭 와 달라는 간청이 있어 잠시 짬 내어 뒤늦게 합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그날따라 왠지 싸늘한 느낌이 감돌았다. 그래,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말석에 앉아 있다 보니, 아하! 바로 이 때문이구나하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그 새로 왔다는 인물의 ‘자랑’. 그 자랑은 남편이 사준 알파카 코트에서부터 시작해 명품백, 명품 보석으로 신나게 이어지더니 급기야 전세 대출금 이야기하는 사람 앞에서 새로 산 건물 자랑으로 마무리하며 ‘왜, 다들 부러우세요?’라는 말로 최정점을 찍었다. 그야말로 3종, 4종 세트로 자랑질을 해댔으니, 다들 처음에는 그냥 듣다 나중에는 말없이 음식만을 꾸역꾸역 먹게 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옛말에 복은 검소함에서, 덕은 겸손에서, 지혜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긴다는 말이 있다. 물론 요즘은 자기 피알시대라, 어느 정도의 자랑은 귀엽게 봐줄 만도 하고 어느 정도 또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친 자랑은 오만함으로 이어지고, 오히려 주변 사람을 잃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어리석은 자는 배우지 못하고 무식해서 산뜻한 옷에 좋은 갓을 쓰고 좋은 안장에 날랜 말을 타는 것으로 위풍을 떨치려 한다.’면서 ‘어리석은 자는 그러고 나서 남들이 부러워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부러워하기는커녕 도리어 미워하게 되니, 자기의 재산을 축내고, 자기의 명예마저 손상시킨 데다 남의 미움까지 사게 되니, 어리석은 짓 아닌가?’라 한 바 있다. 그러면서 사치를 통한 자랑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기보다는 검소함을 통한 겸손으로 제대로 된 인간이 될 것을 강조하였다.

중국 송대의 유명한 정치가이자 사학자인 사마광 역시 ‘家範’에서 겸손과 검소함은 인간의 덕을 기르는 기초이기에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자녀교육의 핵심이어야 한다 했고, 조선 시대 정조는 이를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즉위년(1776) 3월 16일, 궁중의 내시와 궁녀들을 대폭 축소하는가 하면, 재위 기간(24년) 동안 12첩 수라상 대신 하루에 두 끼, 그리고 한 끼에 다섯 가지 반찬만 먹기를 실천했고, 곤룡포·강사포를 제외한 옷들을 비단 아닌 무명으로 지어 입거나 심지어 구멍 난 버선을 실로 꿰매 신기도 했던 일이 그 대표적이다.

우리 선조들이 이처럼 검소함을 강조한 것은 사치할 돈이 없어서이거나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었다. 검소함에서 청렴함이 생겨나고, 자랑할 마음은 사라지며, 스스로 절제하는 데서 겸손함이 획득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덕이 자연스럽게 생겨나 타인을 포용할 수 있게 되고, 마침내 한 인간으로서 한층 더 성장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2월 말이다. 이 겨울의 끝자락에, 사치와 자랑으로 치장한 ‘어리석음’ 대신 검소와 겸손으로 무장한 ‘현명함’으로 한겨울을 마무리하고 새봄맞이 마음을 한번 다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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