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은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고, 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회견이 끝난 뒤 참석한 기자들 상당수는 왠지 현 정부에 우호적이거나 온건한 성향의 기자들이 많이 지명된 것 같다는 의구심을 털어놨다. 또 질문자로 지명된 기자들이 거의 대부분 회견장 앞 첫째 줄과 둘째 줄에 포진해 있었던 사실 또한 우연한 일이었을까 의심스러웠다. 기자회견 시작하기 약 1시간 전에 영빈관에 입장해보니 이미 회견장 앞 둘째줄까지 꽉 차 있었던 점도 이상했다. 당시에는 “무척 부지런한 기자들이 많구나” 하고 지나갔지만 돌이켜보면 청와대측의 고육지책은 아니었을까.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살아있는 답변을 통해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국민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대통령의 질문자 지명 이벤트는 지난 해에 이어 재연했지만 청와대측은 지난 해 생방송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악몽을 되풀이할 수 있다고 우려했을 수 있다. 지난 해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한 지역 방송기자가 문 대통령에게 “나라 살림살이가 어려운 데 무슨 자신감으로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공격적인 질문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 이어 이날도 우리 경제지표 개선을 이유로 ‘많이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신규 취업자가 28만명 증가해 역대 최고 고용률을 기록했고, 청년 고용률도 1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평가했다. 수출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우리는 미·중 무역 갈등과 세계 경기 하강 속에서도 수출 세계 7위를 지켰고,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 11년 연속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업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세금으로 늘린 노인 공공 일자리가 크게 반영됐고, 40대 이하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줄고, 초단시간 취업자가 급증하는 등 일자리 질은 오히려 급속히 나빠졌다. 수출상황도 마찬가지다. 순위나 수출액은 맞지만 지난 해 우리나라의 수출은 10.3% 감소해 세계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고, 무역 흑자는 372억달러로 전년에 비하면 반 토막이 됐다. 이런 부정적인 지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년사에서) 긍정적인 지표를 많이 말하고, 부정적인 지표를 말하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말한 내용은 전부 사실”이라고 했다. 신년사 이후 언론의 따가운 비판이 잇따랐던 걸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객관적인 경제지표에 대해 의도적인 거짓말을 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우면 어렵다고 인정해야 새로운 개선책이 나올 것 아닌가. 영세자영업자들을 포함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데, 대통령과 정부가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다는 식의 안이한 인식을 보이는 현실은 국민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