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아, 망했다!” 2020년에 대한 느낌을 묻는 말에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반응이다. “왜? 중학생이 되잖아!” “중학교 왜 있어요? 꼭 가야 해요?”

필자는 초등학교 입학을 학수고대하며 입학식 전날까지 가방을 안고 자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그런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된다는 세월의 빠르기에 숨이 막혔다. 비록 초등학교 입학 전의 기대가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원망으로 바뀌었지만, 뭐든지 긍정적인 아이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절망에 가까운 부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처음이라 몹시 놀랐다.

필자의 놀람은 금방 걱정으로 변했다. “중학교 가면 서열이 있대요. 인기 있는 애들은 선배들이 처음부터 챙겨주고, 혼자 다니거나 인기 없는 애들은 학교에서 찐따처럼 지내야 한대요. 또 선배나 친구들에게 한 번 찍히면 끝이래요! 1학년 때는 자유 학년제라 시험을 안 쳐서 다들 학교에서는 놀고, 학원 가서 공부한다는데 왜 중학교 1학년이 있어요?”

서열, 찐따, 자유 학년제, 학원 등 필자가 들어도 마음이 무거운 단어들인데, 중학교 입학도 전에 이런 단어들에 노출된 아이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리고 지금의 심상치 않은 중학교 분위기가 상상되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3년 내내 또 의미도 없는 졸업장을 따기 위해 극도의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할 아이를 생각하니 부모로서 아이의 중학교 입학이 망설여졌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해외로 나가는 부모들이 이해갔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와 같이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기에 아이에게 미안했다.

지난주 산자연중학교에서는 2020학년도 입학과 전학을 위한 예비학교가 2박3일 동안 열렸다. 올해도 제주도에서부터 서울, 대전 등 전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왔다. 비록 학년은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뭔가에 잔뜩 주눅든 모습이었다. 무엇이, 또 누가 저 아이들을 저토록 주눅들게 했는지 필자는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청와대에도, 정부에도, 그 어디에도 없다.

글 오염에 가까운 사회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영혼 없는 신년사가 남발되는 요즘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2020 경자년 희망찬 새해”라고 말한다. 과연 그들은 희망(希望)이라는 말의 뜻을 알기나 하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뻔뻔해도 최소한 이 나라 돌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새해 앞에 “희망찬”이라는 수식어는 절대 붙이지 못할 것이다.

절망만 가득한 이 나라와 이 나라 교육에 제일 필요한 단어는 희망이다. 그런데 대변혁이 일어나지 않고는 2020년도도 2019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희망이 부재한 이 나라 교육계는 신입생을 받을 준비가 되었을까? 필자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아이는 믿지 않는다.

혹시 대통령께서 “이 나라 중학교에는 왕따, 학교폭력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모든 학생이 즐겁고 행복하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 중학교입니다”라고 말하면 아이가 믿을까? 그런데 슬프게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이 나라에는 없다.